둠 (32X)
둠 (Doom Europe) · 1994 · S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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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용 기기에 들어온 1인칭 슈팅
1993년에 컴퓨터로 나온 이 게임은 그 시절 사람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화면 전체가 1인칭 시점으로 움직이고, 통로를 돌면 어둠 속에서 괴물이 튀어나오고, 산탄총을 쏘면 화면이 번쩍입니다. 그때까지 가정용 게임기가 보여 주던 것과는 종류가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게임기 회사들은 이걸 어떻게든 자기 기기에 올리고 싶어 했습니다. 이 이식판은 세가의 확장 기기를 통해 그 시도를 한 결과물입니다. 화면 크기를 줄이고 세부를 덜어내는 대신, 원작의 속도감을 지키는 쪽을 택했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둠(Doom)은 화성의 연구 기지에서 열린 문을 통해 쏟아져 나온 괴물들을 상대하는 1인칭 슈팅 게임입니다. 시점은 주인공의 눈이고, 화면 아래에 얼굴과 체력, 탄약이 표시됩니다.
한 판의 흐름은 명확합니다. 미로 같은 기지를 돌며 색깔 열쇠를 찾아 같은 색 문을 열고, 최종적으로 출구 스위치를 눌러 다음 구역으로 넘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괴물들을 총으로 정리하고, 바닥에 놓인 탄약과 방탄복과 구급상자를 챙깁니다.
무기는 주먹과 권총에서 시작해 산탄총, 기관총, 로켓 발사기 순으로 늘어납니다. 상황마다 맞는 무기가 달라서, 좁은 통로에서는 산탄총이, 멀리 떨어진 적에게는 기관총이, 큰 덩치에는 로켓이 답이 됩니다. 무기를 바꾸는 손놀림이 곧 실력입니다.
싸우는 요령
이 게임의 적들은 서로를 못 알아봅니다. 그래서 적의 공격이 다른 적에게 맞으면 그들끼리 싸우기 시작합니다. 여럿이 몰려 있을 때 일부러 위치를 잡아 서로 치고받게 만드는 건, 이 게임을 오래 한 사람들이 쓰는 기본 전술입니다.
또 하나는 계속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 게임에는 조준을 위아래로 올리는 조작이 없고 좌우만 맞추면 되므로, 옆으로 계속 돌면서 쏘는 게 가능합니다. 제자리에 서서 쏘면 상대의 화염구를 그대로 맞습니다. 원을 그리듯 돌며 쏘는 움직임이 몸에 붙으면 생존율이 크게 올라갑니다.
숨은 방도 많습니다. 벽처럼 보이는 곳을 밀면 열리는 자리가 곳곳에 있고, 그 안에 좋은 무기나 방탄복이 들어 있습니다. 벽 무늬가 주변과 미묘하게 다른 곳을 눈여겨보는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
이식판이 잃은 것과 지킨 것
화면이 원작만큼 크지 않고, 처리할 수 있는 양을 맞추기 위해 일부 구역과 적, 무기가 빠졌습니다. 벽과 바닥의 표현도 단순해졌습니다. 그래서 컴퓨터판을 먼저 접한 사람에게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대신 이 판본은 움직임의 부드러움을 지켰습니다. 화면이 뚝뚝 끊기면 1인칭 슈팅의 재미 자체가 사라지므로, 그림을 덜어내더라도 속도를 지키는 판단은 옳았습니다. 소리도 그럭저럭 원작의 분위기를 옮겨 왔습니다.
같은 시기에 다른 기기로 나온 이식판들과 비교하면, 이쪽은 원작의 구조를 비교적 온전하게 옮긴 축에 듭니다.
처음 하는 사람에게
길을 잃는 게 가장 흔한 어려움입니다. 기지가 미로처럼 얽혀 있고 같은 무늬의 통로가 반복되어서, 어디를 지나왔는지 헷갈립니다. 지도를 켜서 지나온 곳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으면 훨씬 수월합니다.
탄약을 아끼는 것도 중요합니다. 약한 적에게 로켓을 쓰다가 정작 큰 적 앞에서 권총만 남는 일이 생깁니다. 잡졸은 산탄총으로, 강한 적은 아껴 둔 화력으로 처리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습니다.
체력이 낮을 때는 무리하지 말고 물러서서 구급상자를 찾는 편이 낫습니다. 이 게임은 한 구역을 통째로 다시 해야 하는 구조라, 죽는 손해가 생각보다 큽니다.
그 시절의 기억
국내에서 이 게임을 처음 만난 사람은 대개 컴퓨터 쪽이었습니다. 가정용 기기로 나온 이 판본은 그보다 접하기 어려웠지만, 게임기에서도 이런 게 돌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움이었습니다. 1인칭 슈팅이라는 장르가 자리를 잡기 전, 그 시작점을 보여 주는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