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파이터
로드 파이터 (Road Fighter SET 1) · 1984 · Kon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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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기만 해도 터지는 차
이 게임을 처음 하면 왜 이렇게 잘 죽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앞차를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내 차가 빙글 돌면서 폭발합니다. 도로 옆 잔디에 바퀴 하나만 걸쳐도 차가 미끄러지며 통제를 잃습니다. 속도를 올리면 올릴수록 이 판정이 더 무섭게 다가옵니다.
그런데도 속도를 줄일 수가 없습니다. 화면에 연료 게이지가 있고, 달리는 동안 계속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연료가 떨어지면 결승선을 못 넘고 그대로 끝납니다. 빨리 가야 살고, 빨리 가면 죽는 이 모순이 이 게임을 계속 붙잡게 만들었습니다.
이 게임은 로드 파이터(Road Fighter)입니다. 위에서 살짝 기울여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도로를 달리며, 앞차와 장애물을 피해 정해진 구간의 끝까지 가는 레이싱입니다.
연료와 연료 차
도로 위에는 다른 차들 사이에 색이 다른 차가 섞여 있습니다. 이 차에 부딪히지 않고 살짝 닿으면 연료가 채워집니다. 정확히는 접촉해서 얻는 방식이라, 부딪혀 터지지 않게 각도를 맞춰야 합니다.
연료를 놓치면 남은 거리를 계산하며 조마조마하게 달려야 합니다. 게이지가 거의 비었는데 결승선 표시가 아직 멀 때의 초조함이 이 게임의 긴장감입니다. 반대로 연료 차를 제때 챙기면 여유가 생겨서, 더 과감하게 앞차 사이를 파고들 수 있습니다.
방해하는 것들
도로에는 그냥 앞으로만 가는 차만 있는 게 아닙니다. 좌우로 차선을 바꾸며 진로를 막는 차가 있고, 미끄러운 구간에서 접지력이 떨어지는 구역이 있습니다. 물웅덩이나 기름이 깔린 자리에 들어가면 조향이 먹지 않아서, 그 구간이 끝날 때까지 그냥 흘러가야 합니다.
트럭이 앞을 가로막고 있으면 옆으로 빠져나갈 틈을 찾아야 하는데, 그 틈이 생각보다 좁습니다. 속도를 유지한 채로 좁은 틈을 통과할 때의 손맛이 좋아서, 성공하면 그 자체로 기분이 났습니다.
스테이지가 넘어갈수록 차가 더 많아지고 진로 방해가 심해집니다. 후반 코스는 사실상 차들 사이를 실뜨기하듯 지나가야 합니다.
단순해서 오래 간 게임
조작은 방향과 가속뿐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이 오래 기억되는 건 그 단순함 위에서 실력 차가 확실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어느 차선으로 미리 옮겨 둘지, 언제 최고 속도를 유지하고 언제 잠깐 늦출지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진도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밝은 색으로 그려진 도로와 반복되는 경쾌한 배경음도 이 게임의 인상에 한몫합니다. 짧은 곡이 계속 돌아가는데, 지금도 첫 소절만 들으면 알아채는 사람이 많습니다.
초기 레이싱 게임의 기본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라, 이후 비슷한 시점과 규칙을 쓴 게임들이 여럿 나왔습니다. 지금 해 봐도 규칙을 설명할 필요 없이 바로 붙을 수 있고, 대신 결승선까지 가는 건 여전히 만만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