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 16
루트 16 (Route 16) · 1981 · Sun Electronics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화면 밖으로 이어지는 지도
이 게임을 처음 하면 가장 먼저 당황하는 것이 화면 밖입니다. 차를 몰고 오른쪽 끝으로 나가면 화면이 바뀌면서 전혀 다른 미로가 나타나고, 그렇게 여러 번 이동하다 보면 자기가 어디쯤 있는지 알 수 없어집니다. 한 화면에 다 담기지 않는 넓은 지역을 여러 칸으로 쪼개 이어 붙인 구조인데, 1981년 게임으로서는 꽤 야심 찬 발상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실제 난이도는 운전이 아니라 길 찾기에서 나옵니다. 어느 방향으로 나가면 어디로 이어지는지를 몸으로 외우기 전까지는, 추격을 피해 달아나다가 막다른 골목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일이 계속 반복됩니다.
어떤 게임인가
루트 16(Route 16)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차를 몰며 미로처럼 얽힌 도로를 돌아다니는 게임입니다. 각 구역에 흩어져 있는 돈뭉치를 전부 주우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그동안 적 차량이 계속 쫓아옵니다.
조작은 레버로 상하좌우 방향을 정하는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차는 정한 방향으로 계속 굴러가기 때문에, 교차로에서 방향만 제때 바꿔 주면 됩니다. 단순하지만 갈림길이 촘촘해서 손이 한 박자만 늦어도 원치 않는 길로 빠집니다.
추격을 다루는 법
쫓아오는 차는 이쪽을 향해 곧장 오는 게 아니라 도로를 따라 움직입니다. 그래서 좁은 통로에서 정면으로 마주치는 상황만 피하면 대체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요령은 갈림길이 많은 구역에서 원을 그리듯 돌면서 상대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구역 이동은 도망의 가장 좋은 수단이기도 합니다. 화면 끝으로 나가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면 추격자를 떼어 놓을 수 있는데, 다만 그 구역에 다른 위협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으니 무작정 도망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돈을 다 줍기 위해 결국 모든 구역을 한 번씩은 돌아야 하므로, 처음부터 무작정 뛰어드는 대신 한 구역씩 확실히 비우고 넘어가는 편이 안전합니다. 한 구역에 하나만 남겨 두고 다른 데로 넘어가면 나중에 그것만 주우러 위험한 길을 되돌아가야 합니다.
체크무늬 깃발을 주우면 잠시 상황이 뒤집힙니다. 쫓아오던 차들이 오히려 주울 수 있는 대상으로 바뀌어서, 그동안 몰아붙이던 상대를 거꾸로 사냥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바닥의 기름을 밟으면 속도가 떨어지고, 폭탄에 닿으면 그대로 끝납니다. 연료도 계속 줄어들기 때문에 속도 버튼을 남발하면 금방 바닥납니다.
초기 오락실 게임으로서의 위치
1980년 전후의 오락실은 한 화면에서 모든 것이 벌어지는 게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화면 밖으로 세계가 이어진다는 개념 자체가 아직 흔치 않았고, 그것을 스크롤 대신 화면 단위 전환으로 구현한 것이 이 게임의 방식입니다. 이후 여러 미로 액션과 어드벤처 게임이 같은 구조를 쓰게 됩니다.
이 게임이 그 문제를 푼 방식이 전체 지도 화면입니다. 한 구역을 빠져나갈 때마다 화면이 전환되면서 전체 지도가 뜨고, 거기에 내 차와 적 차들의 위치,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돈뭉치가 어디 있는지가 한눈에 표시됩니다. 눈앞의 추격만 보는 게임에 지도라는 전략의 층을 하나 얹어 준 셈이고, 이것이 이 게임이 지금까지 기억되는 이유입니다.
그림은 소박합니다. 도로는 단색 선이고 차는 몇 픽셀짜리 도형이지만, 구역마다 색을 달리해 지금 어디 있는지 구분되게 만든 처리가 실용적입니다. 이런 최소한의 장치로 길을 기억하게 만드는 설계가 초기 게임 특유의 절약된 솜씨입니다.
두 명이 번갈아 하는 방식도 지원해서, 옆 사람이 먼저 어느 구역이 위험한지 알아내 주면 다음 차례에 그 정보를 써먹게 됩니다. 오락실에서 옆 사람의 판을 구경하며 배우는 문화가 이런 게임에서 특히 잘 작동했습니다.
만든 곳과 그 뒷이야기
만든 곳은 선 일렉트로닉스인데, 이 회사는 나중에 이름을 선소프트로 바꾸고 패미컴 시절에 블래스터 마스터 같은 작품으로 훨씬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게임은 그 회사가 아직 오락실 기판을 만들던 시절의 초기작입니다.
이 회사가 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이후 행보에 드러납니다. 몇 년 뒤 패미컴으로 그림과 음악을 손보고 난이도를 고를 수 있게 만든 판을 다시 내놓았고, 그 뒤로도 자사 게임을 모아 내는 모음집마다 이 게임을 넣었습니다. 스스로 뿌리로 여기는 작품인 셈입니다.
지역마다 판매를 맡은 회사가 달랐던 것도 이 시절 특유의 사정입니다. 일본에서는 만든 회사가 직접 팔았지만, 북미와 유럽에서는 각각 다른 회사가 판권을 받아 유통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게임인데도 나라마다 상자와 기계 겉모습이 다릅니다.
지금 해 볼 만한 이유
이 게임은 처음 몇 판이 유난히 답답합니다. 지도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추격까지 받으니 아무것도 못 하고 끝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서너 판만 돌면 구역 배치가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때부터는 도망 경로를 미리 계획하며 움직이게 됩니다. 이 전환의 순간이 이 게임의 핵심 재미입니다.
규칙이 단순해 설명이 거의 필요 없고, 한 판이 짧아 실패해도 부담이 적습니다. 초기 오락실 게임이 어떤 식으로 적은 자원 안에서 깊이를 만들어 냈는지 확인해 보기에 적당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