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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코 퀴즈

치비 마루코짱 디럭스 퀴즈 (Chibi Marukochan Deluxe Quiz) · 1995 · Tak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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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한구석에는 늘 퀴즈 기판이 하나쯤 있었습니다. 화면에 문제가 뜨고 버튼 네 개 중 하나를 누르는 것이 전부인데, 문제를 못 읽는 사람도 옆에서 구경하며 답을 맞혀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 게임은 일본에서 국민 만화 취급을 받는 작품의 캐릭터들을 앞세운 그런 퀴즈 기판입니다.

치비 마루코짱 디럭스 퀴즈(Chibi Marukochan Deluxe Quiz)는 만화 치비 마루코짱을 소재로 만든 사지선다 퀴즈 게임입니다. 주인공 마루코와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는 방송 프로그램 형식으로 진행되고, 문제 하나에 네 개의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정해진 횟수만큼 틀리면 그대로 끝납니다.

마루코 퀴즈 보드·카드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5)

한 판의 흐름

시작하면 캐릭터를 고르고 퀴즈가 이어집니다. 문제가 뜨고 제한 시간 안에 버튼을 눌러야 하며, 시간이 지나면 오답으로 처리됩니다. 정답이면 다음 문제로, 오답이면 목숨이 하나 줄어듭니다. 세 번 틀리면 끝나는 구조라 여유가 많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붙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는 같은 문제를 두고 누가 먼저 맞히느냐를 겨루는 형태가 되어서, 아는 문제가 나왔을 때 손이 빨라야 합니다. 퀴즈 게임에 반사신경이 개입하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마루코 퀴즈 보드·카드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95)

언어의 벽

이 장르의 가장 큰 한계는 문제가 일본어로 나온다는 점입니다. 만화와 방송, 일본 사회에 관한 문제가 대부분이라, 그 배경을 모르면 사실상 찍는 게임이 됩니다. 그래서 한국 오락실에서 일본어 퀴즈 기판은 그림이 예쁜 게임이나 캐릭터 게임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대로 일본어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에게는 이런 게임이 뜻밖의 즐거움이었습니다. 문제를 읽어 내고 정답을 맞히는 것 자체가 성취감이 있고, 옆에서 못 읽는 친구들에게 답을 알려 주는 재미도 컸습니다.

마루코 퀴즈 보드·카드 게임 화면 3 - 오락실 (1995)

퀴즈 게임이라는 장르

오락실 퀴즈 게임은 1980년대 후반부터 일본에서 크게 유행했습니다. 만들기가 상대적으로 쉽고, 문제 데이터를 바꾸면 새 게임이 되며, 한 판이 짧아 회전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화면이 필요 없으니 개발 비용도 적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인기 만화나 방송 프로그램을 소재로 한 퀴즈 기판이 셀 수 없이 나왔습니다. 이 작품도 그 흐름 안에 있고, 이미 널리 알려진 캐릭터를 써서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전형적인 방식을 택했습니다.

잘하는 법이 있다면

퀴즈 게임에서 실력을 올리는 방법은 결국 같은 문제를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문제 수가 유한하기 때문에 여러 판을 하다 보면 본 적 있는 문제가 나오고, 그때부터 진도가 확 나갑니다. 옛 오락실에서 퀴즈 기판을 잘한다는 사람은 대체로 문제를 외운 사람이었습니다.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는 선택지의 생김새를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유독 길거나 유독 구체적인 선택지가 정답인 경우가 많다는 것은 퀴즈 게임 전반에 통하는 요령입니다.

지금의 자리

이 게임은 특정 만화의 팬이거나 그 시절 일본 오락실 문화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게임으로서의 깊이보다는, 인기 캐릭터를 오락실 기판에 얹던 시절의 방식을 보여 주는 자료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캐릭터들이 움직이고 반응하는 화면 자체는 만화 팬이라면 반가울 만합니다. 문제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화면을 구경하는 재미가 남아 있는, 그런 부류의 게임입니다.

화면과 연출

문제만 나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화면에서 캐릭터들이 반응합니다. 맞히면 좋아하고 틀리면 실망하는 표정이 나오고, 진행 상황에 따라 연출이 붙습니다. 문제를 못 읽는 사람도 지금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화면만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연출은 퀴즈 게임에서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문제와 답만 반복되면 금방 지루해지는데, 캐릭터가 반응해 주면 한 판이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만화의 인물들을 쓴 것도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퀴즈 기판은 문제를 다 외우면 수명이 끝납니다. 그래서 업소에서는 몇 달 돌리다 다른 기판으로 바꾸는 경우가 많았고, 제작사들도 그것을 전제로 계속 새 퀴즈 게임을 내놓았습니다. 이 장르가 유독 많이 만들어진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이런 게임은 짧게 여러 사람이 즐기는 데 최적화되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오래 붙잡는 대신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붙는 구조라, 오락실이라는 공간에는 잘 맞는 물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