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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츠건

배츠건 (Batsugun SET 1) · 1993 · Toa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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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막 슈팅이 시작된 자리

슈팅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게임은 이름만으로 특별한 대접을 받습니다. 화면을 가득 채운 탄이 천천히 밀려오고, 그 사이의 좁은 틈을 실처럼 빠져나가는 그 감각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여 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의 슈팅은 빠른 탄을 반사신경으로 피하는 것이었다면, 이 게임부터는 느리지만 촘촘한 탄의 무늬를 읽고 통과하는 방식으로 바뀝니다. 이후에 나온 수많은 탄막 슈팅의 출발점이 여기입니다.

배츠건(Batsugun)은 토아플랜이 1993년에 내놓은 세로로 흐르는 슈팅 게임입니다. 전투기 한 대를 조종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지상과 공중의 적을 정리하고 스테이지 끝의 거대한 보스를 쓰러뜨리는, 형식만 보면 익숙한 구조입니다. 그런데 안을 들여다보면 이 회사가 그동안 쌓아 온 것들을 한꺼번에 쏟아부은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배츠건 슈팅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3)

기체를 키우는 슈팅

가장 큰 특징은 기체가 성장한다는 점입니다. 적을 쓰러뜨리면 경험치가 쌓이고, 일정량이 모이면 기체의 등급이 올라가면서 주무기의 모양과 위력이 통째로 바뀝니다. 슈팅 게임에 성장 요소를 넣은 시도 자체가 당시로서는 드물었고, 이 덕분에 판이 진행될수록 화면이 눈에 띄게 화려해집니다.

이 구조는 실력 차이를 완만하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잘하는 사람은 적을 많이 잡아 빨리 강해지고, 못하는 사람도 진행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화력이 붙습니다. 다만 죽으면 강화가 후퇴하기 때문에,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화력이 약해지고 그래서 또 죽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후반에 한 번 죽고 나서 복구가 안 되는 상황이 이 게임에서 가장 답답한 순간입니다.

고를 수 있는 기체는 여러 종류이고, 같은 기체라도 조종사에 따라 성능이 조금씩 다릅니다. 넓게 퍼지는 무기는 잡졸 정리가 편하고, 앞으로 모이는 무기는 보스를 빨리 깎습니다. 자기 실력과 성향에 맞는 조합을 찾는 것이 이 게임을 오래 붙잡는 재미입니다.

배츠건 슈팅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93)

어떻게 피하는가

이 게임을 처음 잡은 사람은 화면을 보고 먼저 놀랍니다. 탄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탄 하나하나가 느리고, 판정도 기체 전체가 아니라 아주 작은 한 점입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맞은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그 사이를 지나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령은 크게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며 도망치면 오히려 새 탄의 벽에 부딪힙니다. 다가오는 탄의 무늬를 보고 어느 방향으로 열려 있는지를 판단한 뒤, 작게 움직여 그 틈으로 들어가는 편이 훨씬 안전합니다. 이 감각을 익히는 데 시간이 좀 걸리지만, 한 번 붙으면 다른 슈팅 게임까지 같이 늘어납니다.

폭탄은 아끼다 죽는 것이 가장 흔한 실수입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먼저 쓰는 것이 맞습니다. 특히 보스가 패턴을 바꾸는 순간이나 화면이 갑자기 어두워질 정도로 탄이 쏟아지는 구간에서는 미리 쓰는 것이 정석입니다.

토아플랜의 마지막 작품

토아플랜은 1980년대부터 슈팅 게임을 꾸준히 만들어 온 회사입니다. 견실한 종스크롤 슈팅을 여러 편 내놓으며 이 장르의 기본형을 다듬었는데, 이 게임이 사실상 마지막 작품이 되었습니다. 회사가 문을 닫은 뒤 만들던 사람들은 여러 갈래로 흩어졌고, 그 가운데 한 무리가 세운 회사가 이후 탄막 슈팅의 대명사가 되는 작품들을 내놓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한 장르의 끝이자 다음 장르의 시작으로 이야기됩니다. 실제로 이 게임을 해 보고 나서 이후의 유명한 탄막 슈팅들을 하면, 무엇이 여기서 나왔는지가 눈에 보입니다. 탄의 속도, 판정의 크기, 화면을 채우는 방식까지 이어지는 것이 많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이 게임이 나온 1993년 무렵 한국 오락실은 대전 격투가 거의 모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틈에서 슈팅 기판은 점점 줄었고, 그래서 이 게임을 오락실에서 직접 만나 본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대신 슈팅을 파고들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꼭 해 봐야 할 작품으로 계속 언급되어 왔습니다.

지금 처음 잡아 보는 사람이라면 죽는 것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몇 판 흘려보내는 편이 좋습니다. 기체가 커지는 감각과 탄 사이를 지나가는 감각, 이 두 가지만 손에 붙으면 그때부터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됩니다.

점수를 노리는 방식도 알아 두면 재미가 늘어납니다. 적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정리할수록 성장이 빨라지고, 성장이 빠르면 다음 구간이 편해지므로 결과적으로 더 멀리 갑니다. 살아남는 것과 점수를 올리는 것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로 이어지는 구조라, 잘하게 될수록 판이 시원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