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오락실)
배트맨 (Batman) · 1991 · Atari G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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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서 마이클 키튼의 목소리가 나오던 시절
이 게임을 처음 봤을 때 놀라는 부분은 대개 연출입니다. 판과 판 사이에 영화 장면을 그대로 따온 정지 화면이 뜨고, 스피커에서는 배우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배트맨과 조커의 대사가 실제 영화 음성으로 흘러나오는 기판은 1991년 기준으로 흔한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 아타리는 이런 쪽에 힘을 주는 회사였습니다. 기판 성능을 화려한 캐릭터 액션에 다 쓰기보다, 소리와 영상으로 손님을 끌어오는 데 쓰는 감각이 있었습니다. 어두운 고담시 배경과 굵은 음성이 겹치면,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화면을 한 번은 돌아보게 됩니다.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배트맨(Batman)은 1989년 영화를 바탕으로 만든 횡스크롤 액션입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아가며 몰려드는 부하들을 상대하고, 구간 끝에서 기다리는 상대를 넘기면 다음으로 진행합니다.
기본은 때리고 뛰는 것이지만 순수한 벨트스크롤 액션은 아닙니다. 발판을 타고 위아래로 이동하는 구간이 섞여 있어, 아래에서 몰려오는 적을 피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거나 반대로 아래로 내려가 길을 찾는 판단이 필요합니다.
배트맨답게 도구도 씁니다. 배트랑을 던져 멀리서 처리하거나, 가스탄 같은 물건으로 몰려 있는 무리를 한꺼번에 흔들 수 있습니다. 맨손 공격은 사거리가 짧아 여럿에게 둘러싸이기 쉬우므로, 도구를 언제 아끼고 언제 쓰느냐가 진행 속도를 좌우합니다.
중간에 끼어드는 탈것 구간
이 게임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부분은 중간중간 끼어드는 탈것 구간입니다. 걷고 때리던 화면이 갑자기 배트모빌 운전석 시점으로 바뀌고, 다른 구간에서는 배트윙을 몰게 됩니다.
여기서는 앞으로 달려 나가는 화면을 보면서 방향을 잡고 앞을 막는 것들을 처리하게 됩니다. 액션 구간과는 요구되는 감각이 전혀 달라서, 앞 구간을 잘 넘기고도 여기서 연달아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령은 욕심을 줄이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걸 전부 맞히려고 하면 정작 피해야 할 것을 놓칩니다. 진행 자체는 앞으로 나아가면 끝나는 구조이므로, 부딪히지 않는 것을 첫째로 두고 여유가 있을 때만 공격하는 편이 훨씬 안정적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은 둘러싸이는 겁니다. 좌우 양쪽에서 동시에 붙으면 짧은 사거리로는 답이 없습니다. 등을 벽이나 화면 끝에 붙여 한쪽만 상대하는 자세를 만드는 게 기본이고, 그게 안 되면 점프로 무리를 넘어가 뒤를 잡는 편이 낫습니다.
발판 구간에서는 낙하도 조심해야 합니다. 적에게 맞아 뒤로 밀리는 순간 발판 밖으로 떨어지는 배치가 곳곳에 있습니다. 발판 가장자리에서는 공격보다 자리 잡기를 먼저 하는 게 안전합니다.
체력 관리도 중요합니다. 이런 기판 게임이 대개 그렇듯 회복 수단이 넉넉하지 않아, 초반 판에서 체력을 얼마나 아꼈느냐가 뒷판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쉬운 구간이라고 방심해서 잔챙이에게 몇 대씩 맞으면 정작 마지막에 버틸 여유가 없어집니다.
그 시절 영화 판권 게임들 사이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오락실에는 영화 판권을 붙인 액션이 쏟아졌습니다. 대부분은 이름값으로 손님을 끌고 내용은 평범한 벨트스크롤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 흐름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액션과 탈것 구간을 번갈아 배치해 단조로움을 줄이려 한 편에 속합니다.
같은 원작을 두고 여러 회사가 각자 게임을 만들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가정용으로 나온 배트맨들과 이 기판판은 만든 곳도 구성도 다르므로, 이름이 같다고 같은 게임이라 생각하면 처음에 당황할 수 있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는 영화 자체가 크게 알려져 있었던 만큼 간판만 봐도 무슨 게임인지 통했습니다. 다만 이 기판 자체가 국내에 아주 흔하게 깔린 편은 아니어서, 배트맨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오락실 게임은 사람마다 다른 작품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영화 장면과 음성이 붙은 연출이 여전히 이 게임의 가장 큰 인상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