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고담 시티 레이서
배트맨 고담 시티 레이서 (Batman Gotham City Racer) · 2001 · Ubi So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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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게임이라고 하면 대개 망토를 두르고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배트맨을 차에서 내리게 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배트모빌 운전석에 앉아 있고, 고담의 밤거리를 헤드라이트로 가르며 달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어둡고 각진 고담이 3D로 펼쳐지는 화면은 지금 봐도 분위기가 삽니다.
배트맨 고담 시티 레이서(Batman Gotham City Racer)는 배트모빌을 비롯한 차량을 몰고 시내를 달리며 주어진 임무를 처리하는 드라이빙 액션입니다. 순위를 다투는 경주가 아니라,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거나 달아나는 차를 따라잡거나 추격을 뿌리치는 식의 임무를 하나씩 해결해 나갑니다.
임무의 종류
가장 흔한 형태는 시간 제한 주행입니다. 사건 현장까지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해야 하고, 도중에 부딪히면 시간이 깎이거나 차가 상합니다. 고담의 도로가 좁고 꺾이는 곳이 많아서 길을 모르면 시간을 맞추기 어렵습니다.
추격 임무도 자주 나옵니다. 도주하는 악당의 차를 따라가 들이받아 멈춰 세우는 방식인데, 너무 멀어지면 놓치고 실패합니다. 반대로 경찰이나 악당에게 쫓기며 도망치는 임무도 있어서, 같은 도로를 쫓는 쪽과 쫓기는 쪽 양쪽으로 달리게 됩니다.
임무 사이에는 애니메이션풍 연출로 상황이 설명됩니다. 배트맨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목소리 연기도 붙어 있어서, 그 작품을 좋아했다면 반가운 부분입니다.
운전 감각
배트모빌은 무겁고 빠릅니다. 직선에서 속도가 잘 붙지만 방향을 틀 때 크게 밀립니다. 코너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벽에 처박히기 일쑤입니다.
부스터를 쓸 수 있는데, 직선 구간에서 시간을 벌 때 요긴합니다. 다만 부스터를 켠 채로 코너에 들어가면 거의 확실히 부딪히므로 쓰는 자리를 잘 골라야 합니다.
차가 부딪히면 내구도가 깎이고 다 깎이면 임무가 끝납니다. 그래서 무작정 빠르게 가는 것보다 부딪히지 않고 꾸준히 달리는 쪽이 결국 빠릅니다. 특히 시간 제한 임무에서 벽에 한 번 크게 박으면 그 판은 사실상 끝입니다.
고담이라는 무대
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배경입니다. 애니메이션 시리즈 특유의 어둡고 양식화된 고담이 그대로 옮겨져 있고, 밤거리를 달리는 내내 그 분위기가 유지됩니다. 고층 건물 사이의 좁은 길, 부두, 공장 지대처럼 구역마다 인상이 다릅니다.
다만 도로 구조가 복잡해서 처음에는 방향을 잡기 어렵습니다. 화면에 진행 방향을 알려 주는 표시가 나오지만 갈림길이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몇 번 달려 보며 길을 익히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처음 하는 분께
초반 임무에서 조작 감각을 충분히 익히시길 권합니다. 이 차는 일반 레이싱 게임의 차보다 훨씬 미끄러지므로, 브레이크를 언제 밟아야 하는지 몸으로 알아야 합니다.
실패한 임무는 곧바로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길을 외우는 셈 치고 몇 번 달려 보세요. 두세 번째 시도부터는 어디서 꺾어야 하는지 알게 되어 시간이 훨씬 여유로워집니다.
레이싱 게임의 정교함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운전 실력을 겨루는 게임이라기보다, 배트모빌을 몰고 고담을 누비는 상황 자체를 즐기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그 점을 알고 잡으면 꽤 오래 붙잡게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 맞는가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좋아했던 분이라면 그 세계를 차로 돌아다닌다는 것만으로도 값을 합니다. 인물들의 목소리와 연출이 원작의 결을 잘 따라가고 있어서, 임무 사이의 장면을 넘기지 않고 보게 됩니다.
반대로 배트맨에 별 관심이 없고 운전 자체의 완성도를 보는 분이라면 아쉬울 수 있습니다. 조작이 헐겁고 도로 구조도 친절하지 않아서, 같은 시기의 정통 레이싱 게임과 견주면 손맛이 밀립니다.
한 임무가 짧게 끝나는 구성이라 부담 없이 잠깐씩 붙잡기에는 좋습니다. 실패해도 곧장 그 임무부터 다시 시작하니 흐름이 끊기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