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팩맨
베이비 팩맨 (Baby Pac Man SET 1) · 1982 · Dave Nutting Associ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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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아래에 진짜 핀볼대가 붙어 있던 기계
오락실 기계 중에는 사진만 봐서는 무슨 물건인지 짐작이 안 가는 것들이 있는데, 이 게임이 딱 그렇습니다. 위쪽에는 팩맨이 돌아다니는 브라운관이 달려 있고, 그 아래에는 손바닥만 하게 줄여 놓은 진짜 핀볼 테이블이 누워 있습니다. 유리 밑에 쇠구슬이 굴러다니고 플리퍼가 달린, 전기기계식 핀볼 그대로입니다. 한 대의 기계 안에서 비디오 게임과 핀볼이 번갈아 진행되는 구조였고, 이런 물건을 상업적으로 내놓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발상은 명쾌합니다. 1980년대 초 오락실에서 비디오 게임이 핀볼을 밀어내던 중이었고, 핀볼로 먹고살던 제조사 입장에서는 둘을 한 통에 담아 보는 시도가 나올 만했습니다. 문제는 이 절충이 기계적으로 대단히 까다로웠다는 점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베이비 팩맨(Baby Pac Man)은 1982년에 나온 팩맨 계열 변종입니다. 데이브 너팅 어소시에이츠가 설계를 맡았고, 팩맨 가족 중 아기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위쪽 화면에서는 익숙한 미로 팩맨이 그대로 진행됩니다. 미로를 돌아다니며 점을 먹고 유령을 피하는, 누구나 아는 그 규칙입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미로 안에 파워 쿠키가 없다는 점입니다. 원작에서 유령을 거꾸로 쫓아갈 수 있게 해 주던 그 큰 알약이 미로에서 통째로 빠져 있습니다. 대신 화면 아래쪽에 난 두 개의 통로로 내려가면 화면이 꺼지고 아래 핀볼대에 구슬이 튀어나옵니다. 파워와 과일 보너스는 오직 핀볼을 쳐서 벌어 와야 합니다. 핀볼에서 얻은 것을 들고 다시 미로로 올라가는 왕복 구조가 이 게임의 전부이자 핵심입니다.
두 개의 게임을 오가는 감각
실제로 해 보면 리듬이 아주 독특합니다. 미로에서는 파워가 없으니 유령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게 도망뿐입니다. 원작 팩맨이 파워 쿠키를 언제 먹느냐로 판을 뒤집는 게임이었다면, 이쪽은 그 수단을 아래층에 맡겨 둔 셈이라 미로 구간이 훨씬 조여 오는 느낌을 줍니다. 쫓기다 못해 통로로 내려가면, 이번에는 손이 완전히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핀볼 구간에서는 플리퍼로 구슬을 살려 두면서 목표 지점을 맞혀야 합니다. 여기서 구슬을 금방 빠뜨리면 아무것도 못 벌고 미로로 되돌아가게 되고, 반대로 오래 버티며 잘 쳐 두면 위층이 한결 수월해집니다. 비디오 게임의 판단력과 핀볼의 손목 감각을 한 판 안에서 번갈아 요구하는 구성이라, 둘 중 한쪽만 잘해서는 점수가 크게 오르지 않습니다.
야심만큼 말썽도 많았던 기계
이 기계는 평판이 좋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게임성보다 고장이었습니다. 브라운관과 기판, 그리고 솔레노이드와 스위치가 잔뜩 들어간 핀볼 기구가 한 통에 들어가 있으니 고장 날 곳이 두 배였고, 실제로 자주 말썽을 부렸습니다. 오락실 운영자 입장에서는 손이 많이 가는 기계가 가장 반갑지 않은 물건인데, 이쪽은 딱 그 부류였습니다.
생산 수량은 칠천 대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완전한 실패라고 하기에는 적지 않지만, 팩맨이라는 이름값을 생각하면 크게 성공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숫자입니다. 결국 비디오와 핀볼을 한 통에 담는 시도는 주류가 되지 못한 채 시대의 특이한 갈래로 남았습니다.
지금 이 게임을 해 본다는 것
한국 오락실에서 이 기계를 실물로 만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국내에는 애초에 핀볼 자체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고, 팩맨 계열 중에서도 이 변종은 수입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이름은 국내 이용자에게 통칭도 남기지 않은 낯선 물건입니다.
지금 화면으로 만나는 이 게임의 재미는 결국 발상 자체에 있습니다. 미로에서 쫓기다 아래로 내려가고, 구슬을 굴려 힘을 벌어 다시 올라오는 왕복이 실제로 어떤 감각이었는지를 확인해 보는 일입니다. 파워 쿠키를 미로에서 빼 버린다는 한 줄짜리 결정이 팩맨을 얼마나 다른 게임으로 바꿔 놓는지, 몇 판만 해 봐도 분명히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