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 라이너
브이 라이너 (V Liner SET 1) · 2001 · Dy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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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한쪽 구석의 다른 기계
오락실을 떠올리면 대개 대전 격투 기판이나 슈팅 기판이 먼저 생각납니다. 그런데 그 사이사이, 조이스틱 대신 버튼만 줄지어 달린 기계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화면에는 과일이나 숫자 그림이 돌아가고, 앉은 사람은 레버를 잡지 않은 채 버튼만 두드립니다. 브이 라이너는 그런 부류의 기계입니다.
이런 기기는 액션이나 반사신경으로 승부를 보는 물건이 아닙니다. 화면 속 릴이 돌다가 멈추고, 멈춘 그림이 정해진 줄 위에서 맞아떨어지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한 회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구조를 모르면 지루하고, 구조를 알면 의외로 화면에서 눈을 떼기 어렵습니다.
어떤 기계인가
브이 라이너(V Liner)는 2001년 다이나가 내놓은 비디오 슬롯 형식의 아케이드 기기입니다. 이름의 라이너는 말 그대로 줄, 즉 당첨을 판정하는 페이라인을 가리킵니다. 화면에 세로로 늘어선 릴이 여러 개 있고, 그 릴들을 가로지르는 선 위에 같은 그림이 늘어서면 성립하는 방식입니다.
릴에 그려진 그림은 이런 기기의 오랜 관습을 그대로 따릅니다. 과일이나 숫자, 별이나 종 같은 단순한 도형이 반복되고, 그중 몇 개는 다른 것보다 눈에 띄게 화려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 화려한 그림이 곧 높은 배당을 뜻한다는 건 설명서를 보지 않아도 몇 회 만에 알게 됩니다.
한 회의 흐름은 단순합니다. 걸 만큼을 정하고, 시작 버튼을 누르고, 릴이 멈추기를 기다립니다. 결과가 나오면 다시 반복입니다. 플레이어가 개입할 여지는 얼마를 걸지와 몇 줄을 활성화할지를 정하는 부분, 그리고 기기에 따라 특정 릴을 먼저 멈추게 하는 정도로 한정됩니다.
줄과 배당의 구조
이런 기기를 처음 보는 사람은 화면 가운데 가로줄 하나만 본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는 가로줄뿐 아니라 대각선, 꺾인 선까지 여러 갈래가 판정 대상이 됩니다. 활성화한 줄이 많을수록 맞을 확률이 올라가지만, 그만큼 한 회에 들어가는 몫도 커집니다.
그림마다 배당이 다르게 매겨져 있는 것도 공통된 구조입니다. 흔한 그림은 자주 맞지만 돌아오는 양이 적고, 드문 그림은 좀처럼 줄을 채우지 못하는 대신 맞으면 크게 돌아옵니다. 화면 구석이나 별도 화면에 그 배당표가 항상 떠 있어서, 무엇을 노릴지 눈으로 확인하며 돌리게 됩니다.
게임이 아니라 기기라는 점
중요한 건 이 기계가 실력으로 결과를 바꾸는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릴이 무엇으로 멈출지는 내부적으로 이미 정해지는 구조이고, 플레이어가 버튼을 누르는 순간의 솜씨가 결과를 좌우하지 않습니다. 격투 게임처럼 연습하면 이기는 종류의 재미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화면 앞에서 오래 붙잡고 있어도 늘어나는 건 익숙함뿐입니다. 어떤 그림이 자주 나오는지, 어떤 줄이 잘 채워지는지에 대한 감이 생기기는 하지만 그것이 다음 회차의 결과를 예측하게 해 주지는 않습니다. 이 점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가 큽니다.
대신 이런 기기가 노리는 건 리듬입니다. 짧은 회차가 빠르게 이어지고, 소리와 불빛이 결과를 크게 알려 줍니다. 맞았을 때의 효과음과 잔뜩 올라가는 숫자가 다음 회차를 누르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오락실 기계 중에서도 설계 의도가 가장 노골적인 축에 속합니다.
지금 다시 보면
2000년대 초는 이런 형태의 기기가 아시아권 오락실과 유흥업소에 널리 깔리던 시기였습니다. 다이나는 대만을 기반으로 이런 류의 기판을 여러 종 내놓은 회사로, 브이 라이너도 그 계열에 속합니다. 비슷한 화면 구성에 그림과 배당만 바꿔 낸 형제 기기가 여럿 존재합니다.
지금 이 화면을 다시 켜 보는 의미는 승부보다는 기록에 가깝습니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 오락실의 풍경이 대전 기판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는 것, 그 옆에 이런 기계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는 것을 화면 하나로 확인하게 됩니다. 액션 게임을 기대하고 켰다면 조금 당황스럽겠지만, 그 시절 기기 목록을 훑어본다는 마음이라면 한 번쯤 들여다볼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