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벅스
빅 벅스 (Big Bucks) · 1986 · Dynasoft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이 게임은 새로 만든 기판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오락실에 이미 깔려 있던 팩맨 계열 기판의 롬을 갈아 끼우는 개조 킷으로 유통됐습니다. 미로를 돌아다니던 화면 자리에 퀴즈쇼 진행판이 올라온 셈입니다. 새 기체를 사기 어려운 업장에서 기존 기판을 재활용해 새 손님을 받는 방식으로, 미국 오락실 사업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물건입니다.
빅 벅스(Big Bucks)는 영어로 출제되는 상식 퀴즈 게임입니다. 텔레비전 퀴즈쇼를 흉내 낸 화면에서 분야를 고르고, 문제와 함께 제시되는 보기 중에 답을 선택합니다. 맞히면 상금이 쌓이고 다음 문제로 넘어가며, 틀리면 기회를 잃습니다. 여러 명이 번갈아 가며 상금을 겨루는 구성이라 옆 사람과 붙는 재미를 노렸습니다.
문제를 푸는 흐름
한 판의 흐름은 단순합니다. 화면에 제시된 분야 가운데 하나를 고르면 그 분야의 문제가 나오고, 제한 시간 안에 보기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시간을 다 쓰면 오답으로 처리되므로, 모르는 문제를 붙잡고 고민하는 것보다 감으로라도 찍고 넘어가는 편이 낫습니다. 정답을 맞힐 때마다 상금이 올라가고, 뒤로 갈수록 한 문제의 값어치가 커집니다.
퀴즈 게임의 실력은 결국 아는 만큼이지만, 전략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자신 있는 분야를 먼저 소진하지 말고, 상금이 커지는 후반을 위해 아껴 두는 배분이 필요합니다. 초반에 쉬운 분야로 안전하게 발판을 만든 뒤 후반에 승부를 거는 식입니다. 이런 배분 감각이 있느냐 없느냐로 같은 지식을 가진 두 사람의 기록이 갈립니다.
문제 은행이라는 승부처
퀴즈 게임의 수명은 문제의 개수가 결정합니다. 문제가 적으면 단골이 며칠 만에 전부 외워 버리고, 그때부터 그 기체는 더 이상 돈을 벌지 못합니다. 이 게임이 대량의 문제를 담았다고 내세운 것도 그 때문입니다. 업주 입장에서는 새 문제 롬을 갈아 끼워 기체의 수명을 늘릴 수 있느냐가 실제 구매 이유가 됐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 퀴즈 기판은 문제 갱신을 전제로 설계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게임 내용은 그대로 두고 문제 데이터만 바꾸면 사실상 새 게임이 되기 때문입니다. 화면 연출이나 조작에 힘을 주기보다 문제의 양과 난이도 분포를 관리하는 쪽이 중요했다는 점에서, 다른 장르와는 개발의 무게중심이 완전히 다릅니다.
개조 킷이라는 형식
이 게임이 기존 미로 게임 기판을 개조해 돌아간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를 말해 줍니다. 우선 하드웨어 성능을 거의 요구하지 않는 장르라는 점입니다. 문자를 화면에 뿌리고 입력을 받는 것이 전부라, 몇 년 전의 낡은 기판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개발비와 유통비를 낮춰 소규모 업체도 뛰어들 수 있는 영역이었습니다.
동시에 이 방식은 보존을 어렵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롬만 교체하는 형태다 보니 온전한 기체가 남기 어렵고, 실물을 가진 사람이 극히 드뭅니다. 지금 이 게임을 만나기 어려운 이유가 게임이 나빠서가 아니라 유통 형태 때문이라는 점은 이 시기 소형 업체 작품들이 공통으로 겪은 일입니다.
영어 퀴즈라는 벽
이 게임은 문제와 보기가 모두 영어이고, 다루는 상식도 영어권 대중문화와 역사에 치우쳐 있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이런 형태의 게임이 자리 잡기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조작이 쉽고 규칙이 단순해도, 문제를 읽지 못하면 게임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퀴즈 장르가 널리 퍼진 것은 한참 뒤, 일본과 국내 업체가 낸 한글 또는 그림 위주의 퀴즈 기판이 들어오면서였습니다. 그 기판들 역시 문제를 갈아 끼워 수명을 늘리는 방식은 똑같았습니다. 이 게임은 그 흐름이 자리 잡기 전, 영어권 오락실에서 퀴즈쇼 형식이 어떻게 상품이 됐는지를 보여 주는 표본에 가깝습니다.
지금 해 보는 값어치
지금 이 게임을 하는 재미는 문제를 맞히는 것 자체보다, 1980년대 중반 미국의 상식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들여다보는 데 있습니다. 당시의 유행어와 방송, 인물이 문제 안에 그대로 박혀 있어 시대의 단면이 드러납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모르는 것이 당연한 문제가 많아 점수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규칙이 워낙 단순해서 아무 때나 붙었다가 그만두기 좋습니다. 한 문제에 걸리는 시간이 짧고, 틀려도 곧바로 다음이 나오므로 부담이 없습니다. 화면 앞에 여럿이 모여 서로 아는 것을 외치며 답을 고르면, 원래 이 게임이 노렸던 퀴즈쇼 분위기가 어느 정도 살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