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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반 잔시 류코

스케반 잔시 류코 (Sukeban Jansi Ryuko SET 2 System 16b fd1089b 317 5021) · 1988 · White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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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마작이라는 장르

1980년대 일본 오락실에는 한국에서는 거의 보기 어려웠던 한 칸이 있었습니다. 마작 전용 기판 자리입니다. 레버와 버튼 대신 알파벳이 찍힌 버튼이 가로로 길게 늘어선 전용 조작판이 달려 있고, 화면에는 패가 열네 장 깔려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기계가 오락실 한쪽 벽을 통째로 차지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이 장르가 그만큼 많이 만들어진 이유는 단순합니다. 마작은 이미 일본 어른들이 모두 아는 놀이였고, 규칙을 새로 가르칠 필요가 없었습니다. 게임을 만드는 쪽에서는 규칙 설계에 드는 품이 통째로 빠지는 셈이니, 작은 회사가 기판 하나를 내기에 이만한 장르가 없었습니다.

스케반 잔시 류코 보드·카드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8)

어떤 게임인가

스케반 잔시 류코(Sukeban Jansi Ryuko)는 세가의 시스템 16B 기판에서 돌아가는 일본식 마작 게임입니다. 플레이어가 컴퓨터 상대와 일대일로 마작을 두어 이기면 다음 상대로 넘어가는, 오락실 마작의 가장 흔한 구조를 따릅니다.

마작 자체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 짧게 설명하면, 손에 든 패를 정해진 조합으로 맞추는 놀이입니다. 순서대로 패를 한 장 가져오고 한 장 버리기를 반복하면서, 같은 숫자 세 장이나 이어지는 숫자 세 장 같은 묶음을 만들어 손패 전체를 완성하면 이깁니다. 화투로 치면 조합을 맞추는 부분만 떼어다 훨씬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보면 대강 맞습니다.

스케반 잔시 류코 보드·카드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8)

조작과 한 판의 흐름

조작은 단순합니다. 자기 차례가 오면 버릴 패를 고르고, 상대가 버린 패를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면 그렇게 할지 말지를 정하면 됩니다. 반사 신경이나 손놀림은 전혀 필요 없고, 대신 판단이 전부입니다.

한 판의 흐름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처음 받은 패를 보고 어떤 조합을 노릴지 방향을 정하고, 몇 번 패를 주고받으면서 그 방향을 밀거나 접습니다. 중반을 넘어가면 상대가 무엇을 노리는지가 버린 패에서 조금씩 드러나고, 그때부터는 내 손을 완성하는 것과 상대에게 결정적인 패를 던져 주지 않는 것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게 됩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지점

마작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오락실 마작 기판을 잡으면 십중팔구 규칙에서 막힙니다. 패의 종류가 많고, 완성 조건도 하나가 아니며, 화면에 나오는 안내는 전부 일본어입니다. 게다가 이 시절 오락실 게임은 초보자를 가르쳐 주려는 의지가 거의 없습니다. 설명 화면도 짧고, 틀렸다고 알려 주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이 장르는 게임을 배우는 순서가 거꾸로입니다. 게임을 하면서 규칙을 익히는 게 아니라, 규칙을 먼저 알고 나서 게임을 켜야 합니다. 마작 규칙을 대강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때부터는 조작이 워낙 단순해서 곧바로 붙을 수 있고, 모른다면 화면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또 하나 알아 둘 것은 오락실 마작의 컴퓨터 상대가 대체로 인심이 박하다는 점입니다. 동전을 계속 넣게 만드는 것이 기계의 목적이니, 뒤로 갈수록 상대가 기막히게 좋은 패를 잡습니다. 실력만으로 넘어가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답답해집니다.

기판과 그 시절 사정

이 게임이 돌아가는 세가 시스템 16B는 1980년대 후반 오락실에서 상당히 널리 쓰인 기판입니다. 원래는 액션과 슈팅 같은 화려한 게임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인데, 이런 조용한 테이블 게임에도 쓰였습니다. 기판을 만든 회사가 다른 회사에 기판을 빌려주는 일이 흔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이런 마작 게임은 화면이 의외로 깔끔합니다. 패 그림이 또렷하고 색도 제법 쓰여 있어서, 같은 시기의 더 값싼 기판으로 만든 마작 게임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나은 편입니다.

한국에서는

국내 오락실에서 일본식 마작 기판은 사실상 볼 수 없었습니다. 마작이라는 놀이 자체가 국내에서는 대중적이지 않았고, 규칙을 아는 사람이 적으니 기계를 들여놓아도 동전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화투를 소재로 한 게임이나 사천성 같은 패 맞추기 게임이 채웠습니다.

그래서 이런 게임은 국내 오락실 세대에게 추억의 대상이라기보다, 일본 오락실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 풍경이었는지를 보여 주는 창에 가깝습니다. 같은 시기, 같은 기판 위에서 전혀 다른 게임들이 돌아가고 있었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