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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포지션

스페이스 포지션 (Space Position Japan) · 1986 · S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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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의 세가는 오락실에서 속도를 파는 회사였습니다. 좌석이 통째로 기울어지는 커다란 체감형 기계를 앞세워 다른 회사와 격을 벌려 놓았고, 그 시절 오락실에 들어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 앞에서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이 게임은 그 세가가 1986년에 내놓은 또 하나의 레이싱입니다.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화면을 켜 보면 그 시절 세가가 어떤 감각으로 도로를 그리고 있었는지가 그대로 보입니다.

스페이스 포지션 레이싱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6)

어떤 게임인가

스페이스 포지션(Space Position)은 차 뒤쪽에서 따라붙는 시점으로 코스를 달리는 아케이드 레이싱입니다. 화면 중앙 아래에 내 차가 놓이고, 그 앞으로 도로가 뻗어 나가면서 좌우로 굽이칩니다. 플레이어가 하는 일은 액셀을 밟아 속도를 올리고, 코너에서 차선을 잡고, 앞을 막아선 다른 차를 피하거나 추월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아케이드 레이싱의 규칙은 대체로 하나로 정리됩니다. 시간이 정해져 있고, 정해진 지점을 통과하면 시간이 더해집니다. 다음 체크포인트에 닿기 전에 시간이 0이 되면 게임이 끝납니다. 그러니까 이 장르에서 겨루는 상대는 사실 다른 차가 아니라 시계입니다. 다른 차는 순위를 다투는 경쟁자라기보다 코스 위에 놓인 움직이는 장애물에 가깝습니다.

스페이스 포지션 레이싱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6)

처음 잡았을 때 할 일

조작은 핸들과 액셀, 브레이크, 그리고 기어 정도입니다. 기어가 있는 기종이라면 저속과 고속 두 단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보통이고, 코너 앞에서 저속으로 내리고 직선에서 고속으로 올리는 식으로 씁니다. 처음 하는 사람은 이 기어를 아예 잊고 고속에 놓은 채 달리기 쉬운데, 그러면 코너마다 바깥으로 밀려 나가 시간을 잃습니다.

가장 흔히 막히는 지점은 브레이크를 아끼는 습관입니다. 아케이드 레이싱은 시간과 싸우는 게임이니 감속이 손해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코너에서 벽이나 다른 차에 부딪혀 완전히 멈추는 쪽이 훨씬 큰 손해입니다. 한 번 충돌하면 다시 최고 속도에 오르기까지 몇 초가 날아가고, 그 몇 초가 체크포인트 통과 여부를 가릅니다. 코너 앞에서 미리 속도를 줄이고 안쪽 차선을 잡은 다음 빠져나가면서 다시 밟는 것이 기본입니다.

코스를 읽는 법

이런 게임의 실력은 대체로 코스를 외우는 데서 나옵니다. 화면에 보이는 것만으로 굽이의 각도를 판단하려 하면 늘 한 박자 늦습니다. 그래서 숙련된 사람은 도로의 모양이 아니라 길가에 놓인 표지와 풍경을 기준점으로 삼습니다. 어떤 간판이 지나가면 곧 급커브가 온다는 식으로 몸에 익히는 것입니다.

다른 차를 지나칠 때도 요령이 있습니다. 코너 한복판에서 추월을 시도하면 내 주행선과 상대의 주행선이 겹치기 쉬워 위험합니다. 직선 구간에 들어섰을 때 차선을 미리 바꿔 두고 그대로 지나가는 편이 안전합니다. 앞차의 꽁무니에 바짝 붙어 따라가다 그 차가 갑자기 차선을 옮기면 피할 시간이 없다는 점도 기억해 둘 만합니다.

그 시절 오락실의 레이싱 자리

1980년대 중반 오락실에서 레이싱은 자리를 가장 많이 차지하는 장르였습니다. 핸들과 페달이 달린 기계는 부피가 크고 값도 비쌌기 때문에, 동네의 작은 가게에는 한 대가 있으면 많은 편이었고 그 한 대가 가게의 얼굴 노릇을 했습니다. 좌석에 앉아 핸들을 잡는 순간만큼은 버튼 두 개짜리 게임과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대형 기계가 들어오는 속도가 일본보다 늦었고, 들어오더라도 큰 오락실에 몰렸습니다. 그래서 동네 문방구 앞이나 작은 가게에서 자란 세대에게 레이싱은 매번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 어쩌다 큰 오락실에 갔을 때 하는 특별한 게임이었습니다. 이 게임처럼 널리 퍼지지 못한 기판은 그런 사정 때문에 더욱 마주치기 어려웠습니다.

세가라는 회사

세가는 오락실 기계에서 시작해 가정용 기기까지 넓힌 회사이고, 1980년대에는 특히 아케이드에서 기술을 앞세우는 쪽으로 이름을 얻었습니다. 스프라이트를 크게 확대하고 축소해 속도감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 이 시기 세가 레이싱과 슈팅의 공통된 인장이었습니다. 도로가 굽이칠 때 화면 전체가 기울어지듯 흐르는 감각도 그 기술에서 나옵니다.

이 게임은 세가의 대표작 목록에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같은 회사가 같은 무렵에 내놓은 더 큰 기계들에 가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지금 다시 달려 보면 그 시절 아케이드 레이싱이 무엇을 재미로 삼았는지는 충분히 전해집니다. 화려한 그래픽이나 복잡한 규칙이 아니라, 코너 하나를 깨끗하게 돌아 나갈 때의 손맛과 체크포인트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할 때의 안도감이 그 전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