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닝 런 스즈카 그랑프리
위닝 런 스즈카 그랑프리 (Winning Run Suzuka Grand Prix Japan 89 12 03 Ver 02) · 1989 · Namco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오락실 화면이 전부 도트로 그려진 배경과 확대·축소되는 스프라이트로 채워져 있던 시절에, 이 게임의 화면은 확실히 이상해 보였습니다. 도로가 스프라이트 조각이 아니라 각진 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코스 옆 건물과 관중석 구조물도 납작한 그림이 아니라 모서리가 있는 덩어리로 서 있었습니다. 코너를 돌면 그 덩어리들이 시점에 맞춰 실제로 회전했습니다. 익숙한 레이싱 게임의 매끈한 배경을 기대하고 앉았다가, 거칠지만 확실히 입체인 이 화면을 보고 한동안 어리둥절해하다 동전을 넣게 되는 일이 흔했습니다.
위닝 런 스즈카 그랑프리(Winning Run Suzuka Grand Prix)는 남코가 만든 1인칭 시점 포뮬러 레이싱입니다. 운전석에 앉은 시점으로 서킷을 달리며, 구간마다 정해진 체크포인트를 통과할 때 남은 시간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한 판이 이어집니다. 제한 시간 안에 다음 체크포인트에 닿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게임이 끝나기 때문에, 완주 그 자체보다 매 구간의 손실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실력의 전부에 가깝습니다.
도로가 입체로 보인다는 것
이 게임이 특별했던 이유는 화면을 만드는 방식에 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레이싱 게임은 미리 그려 둔 도로 그림을 화면 아래에서 위로 흘려보내고, 좌우로 밀어 커브처럼 보이게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언덕이나 뱅크가 있어도 실제로 높이가 변하는 게 아니라 화면이 그렇게 보이도록 눈속임을 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반면 여기서는 도로와 주변 구조물이 면으로 이루어져 있어, 언덕을 올라갈 때는 앞이 실제로 가려지고 넘어가는 순간 다음 구간이 한꺼번에 드러납니다. 코너 안쪽 시야가 막히는 느낌, 내리막에서 앞이 훅 열리는 느낌 같은 것들이 눈속임이 아니라 시점 계산의 결과로 나옵니다. 색이 적고 면이 거칠어서 요즘 눈으로 보면 투박하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화면 안에 진짜 공간이 있다는 감각을 준 몇 안 되는 오락실 게임이었습니다.
한 판의 흐름
출발하면 앞에 시간이 걸려 있고, 차를 몰아 구간을 통과할 때마다 그 시간이 늘어납니다. 초반 구간은 여유가 있는 편이라 코스에 익숙해질 틈을 주지만, 뒤로 갈수록 확보해 둔 여유를 그대로 소모하게 됩니다. 그래서 앞 구간에서 얼마나 시간을 벌어 두었는지가 뒤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다른 차들도 코스를 함께 달립니다. 이 게임에서 앞차는 추월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사고의 원인에 가깝습니다. 코너 진입 직전에 앞차가 라인을 막고 있으면 브레이크를 더 일찍 밟아야 하고, 그 한 번의 감속이 다음 체크포인트까지의 여유를 통째로 갉아먹습니다. 코스를 외우는 일과 앞차 위치를 미리 보는 일이 같은 비중으로 중요합니다.
처음 앉으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실패는 코너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는 것입니다. 1인칭 시점은 차체가 보이지 않아 자기 속도를 실제보다 낮게 느끼게 만듭니다. 화면상으로는 아직 여유가 있어 보이는데 실제로는 이미 코너 진입 한계를 넘어선 경우가 많고, 그 상태로 핸들을 꺾으면 바깥으로 밀려 코스를 벗어납니다. 코스를 벗어나면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다시 올리는 데 드는 시간이 곧 남은 판을 날립니다.
요령은 단순합니다. 브레이크를 코너 안에서가 아니라 코너 앞 직선에서 끝내는 것입니다. 감속을 미리 마치고 일정한 속도로 코너를 통과한 뒤 출구에서 가속을 시작하면, 화려하지는 않아도 구간 시간이 눈에 띄게 안정됩니다. 처음 몇 판은 기록을 욕심내지 말고 코스 모양을 외우는 데 쓰는 편이 결국 더 멀리 갑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국내 오락실에서 이 계열의 기기는 자주 보이는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좌석형 대형 기기는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값도 비싸 아무 가게나 들여놓을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있더라도 큰 상가나 유원지 쪽에 한 대씩 놓여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매일 하는 게임이라기보다 어쩌다 마주치면 한 번 앉아 보는 구경거리에 가까웠습니다.
대신 한 번 앉아 본 사람에게는 인상이 오래 남았습니다. 화면이 투박한데도 코너를 돌 때 몸이 따라 기우는 느낌이 들었다는 이야기, 언덕을 넘는 순간이 유난히 기억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그 때문입니다. 3D 레이싱이 흔해지기 한참 전에, 그 감각을 오락실에서 먼저 보여 준 쪽에 서 있던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