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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키 그랑프리

자키 그랑프리 (Jockey Grand Prix SET 1) · 2001 · Sun Amus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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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지오 기판이라고 하면 대개 킹 오브 파이터즈나 메탈슬러그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같은 기판 위에서 돌아가던 게임 중에는 이렇게 성격이 전혀 다른 것도 있었습니다. 조이스틱으로 캐릭터를 조종하는 게 아니라, 화면 앞을 지나가는 말들을 보고 어느 말이 이길지 찍는 게임입니다.

자키 그랑프리(Jockey Grand Prix)는 경마 베팅을 소재로 한 게임입니다. 경주가 시작되기 전에 출주할 말들이 화면 앞을 지나가고, 플레이어는 그것을 보며 어느 말에 걸지 정합니다. 여러 마리에 나눠 걸 수도 있습니다. 베팅이 끝나면 경주가 진행되고, 결승선에서는 느린 화면으로 우승마를 확인한 뒤 배당이 정산됩니다.

자키 그랑프리 보드·카드 게임 화면 1 - 오락실 (2001)

무엇을 보고 고르는가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하는 일은 판단 하나입니다. 경주 전 화면에 나오는 정보와 말들의 모습을 보고 어디에 걸지 정하는 것입니다. 조작 실력이 개입할 여지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재미는 실제 경마를 축약해 놓은 데서 나옵니다. 배당이 높은 말은 이길 확률이 낮고, 확실해 보이는 말은 맞춰도 돌아오는 게 적습니다. 안전하게 조금씩 벌지, 한 번에 크게 노릴지를 매 경주마다 정하게 됩니다.

여러 마리에 나눠 거는 것도 전략입니다. 한 마리에 몰아 넣으면 맞았을 때 크지만 틀리면 전부 잃습니다. 나눠 걸면 안정적이지만 배당이 희석됩니다. 이 저울질이 이 게임의 거의 전부입니다.

자키 그랑프리 보드·카드 게임 화면 2 - 오락실 (2001)

말이 뛰는 화면

게임 자체는 단순하지만 화면에는 공을 들였습니다. 말이 달리는 동작을 실제 움직임을 본떠 만들었고, 여러 마리가 나란히 달리는 장면이 꽤 그럴듯하게 나옵니다. 2001년이라는 시점을 생각하면 네오지오 기판에서 뽑아낸 것치고는 인상적인 편입니다.

결승선 장면도 신경을 썼습니다. 접전이 벌어지면 느린 화면으로 사진 판정 같은 연출이 나오고, 그다음에 우승마가 발표됩니다. 베팅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의 긴장을 만들어 내기 위한 장치입니다.

실제로 이런 게임에서 화면 연출은 중요합니다. 플레이어가 할 일이 없는 시간이 길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 동안 볼 것이 없으면 게임이 지루해집니다.

오락실 안의 다른 코너

오락실에는 액션 게임만 있던 게 아닙니다. 한쪽에는 메달을 넣고 돌리는 기계들이 모인 구역이 따로 있었습니다. 경마, 포커, 슬롯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기계들은 액션 게임과 손님층이 달랐고, 오래 앉아 있는 어른 손님이 많았습니다.

자키 그랑프리는 그 구역에 놓이던 종류의 물건입니다. 네오지오 기판을 쓴 건 이미 널리 깔린 하드웨어를 활용하면 기계를 새로 만들 필요 없이 카트리지만 바꿔 끼우면 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게임은 배선 장치와 설정 안내지가 함께 딸려 나왔습니다.

다만 이 게임 자체가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습니다. 네오지오 기판을 쓴 게임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보기 드문 축에 듭니다. 대전 격투와 액션이 주류였던 네오지오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던 탓도 있습니다.

지금 다시 볼 때

조작이 거의 없으니 게임으로서의 손맛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화면 앞을 지나가는 말들을 보고, 걸고, 기다리는 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단순함 때문에 처음 켜도 무엇을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실제 경마를 몰라도 배당이라는 개념만 이해하면 됩니다. 숫자가 클수록 맞을 확률이 낮고 돌아오는 게 크다는 것, 이것만 알면 몇 경주 만에 자기 나름의 방식이 생깁니다.

2001년이면 네오지오 기판이 이미 노년기에 접어들던 시점입니다. 그런 시기에 이렇게 성격이 다른 게임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그 기판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다양하게 쓰였는지를 보여 줍니다. 오락실이라는 공간이 액션 게임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