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윙
제로 윙 (Zero Wing 2p SET) · 1989 · Toaplan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적을 잡아서 던지는 슈팅
슈팅 게임에서 적은 쏘아 없애는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적을 붙잡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기체 앞으로 빔이 뻗어 나가고, 그 빔에 걸린 적이 그대로 끌려와 기체 앞에 매달립니다. 매달린 적은 총알을 대신 막아 주는 방패가 되고, 버튼을 다시 누르면 앞으로 날아가 다른 적에게 부딪힙니다. 쏠 것인가 잡을 것인가를 매 순간 정해야 하는, 흔치 않은 슈팅입니다.
제로 윙(Zero Wing)은 1989년 토아플랜이 내놓은 횡스크롤 슈팅입니다. 화면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고, 기체는 그 흐름을 따라가며 편대와 포대와 거대한 보스를 상대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붙어 할 수 있고, 목숨을 잃으면 그 자리에서 화력이 초기 상태로 돌아갑니다. 겉보기는 그 시절 횡스크롤 슈팅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지만, 트랙터 빔 하나가 이 게임을 다른 물건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무기와 옵션
기체는 색이 다른 파워업을 먹어 주 무기를 바꿉니다. 앞으로 곧게 뻗어 관통력이 좋은 것, 부채꼴로 넓게 퍼져 화면을 훑는 것, 자동으로 적을 쫓아가는 것이 있고, 같은 색을 계속 먹으면 그 무기가 단계별로 강해집니다. 문제는 상황마다 좋은 무기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잡졸이 무리로 몰려오는 구간에서는 퍼지는 쪽이, 덩치 큰 적과 보스를 상대할 때는 곧게 뻗는 쪽이 유리합니다.
기체 주위를 도는 보조 유닛도 붙습니다. 이 보조 유닛은 함께 총알을 쏘아 화력을 두 배 가까이 올려 주는 동시에, 몸으로 총알을 막아 주지는 않지만 사격 각도를 넓혀 줍니다. 최대까지 갖춘 기체와 방금 죽어 맨몸이 된 기체는 체감 난이도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은 보스가 아니라 목숨을 잃은 직후입니다. 화력이 바닥난 채로 원래 최대 화력을 전제로 짜인 구간을 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트랙터 빔이 살길이 됩니다. 잡을 수 있는 적을 하나 붙잡아 앞에 달고 다니면 그것이 방패가 되어 총알 몇 발을 대신 받아 줍니다.
트랙터 빔을 쓰는 법
처음 하는 사람은 트랙터 빔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 버튼을 눌러 잡는 동작이 한 박자 필요하고, 그 사이에 총을 못 쏘니 손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트랙터 빔을 쓸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성적 차이가 큽니다.
붙잡은 적은 세 가지로 씁니다. 첫째는 방패입니다. 앞이 막힌 채로 좁은 통로를 지날 때 매달린 적이 총알을 먹어 줍니다. 둘째는 무기입니다. 던진 적은 앞으로 날아가며 부딪히는 것을 부수는데, 잡졸 여럿이 겹쳐 오는 자리에서 한 번에 정리됩니다. 셋째는 자리 비우기입니다. 화면에 적이 너무 많아 지나갈 틈이 없을 때, 하나를 잡아 없애는 것만으로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모든 적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크기가 큰 적이나 보스는 걸리지 않고, 이미 하나를 매달고 있으면 다음 것을 잡지 못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잡아 둘지 고르는 판단이 생깁니다. 눈앞의 작은 적을 급하게 잡기보다, 곧 지나야 할 구간에 필요한 방패를 남겨 두는 편이 낫습니다.
토아플랜이라는 회사
토아플랜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슈팅으로 이름을 남긴 회사입니다. 극악한 탄막이 아니라 정직하게 배치된 적과 단단한 조작감으로 승부를 걸었고, 화면을 가득 채우는 커다란 보스를 즐겨 넣었습니다. 제로 윙 역시 보스의 덩치와 부위별로 부서지는 연출에서 이 회사의 취향이 드러납니다.
토아플랜은 1990년대 중반에 문을 닫았지만, 여기서 일하던 사람들이 흩어져 새 회사들을 세웠고 그 회사들이 이후 슈팅 장르를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토아플랜의 게임을 해 보면 이후 십 년간 나온 슈팅들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보입니다. 적이 나오는 방식, 파워업이 흘러가는 리듬, 보스에 들어가기 전 화면이 잠시 비는 호흡 같은 것들입니다.
한 문장이 남긴 것
제로 윙은 오락실판보다 뒤에 나온 가정용 이식판의 영문 도입부 때문에 훨씬 널리 알려졌습니다. 일본어 대사를 어색하게 옮긴 몇 줄이 인터넷에서 오래도록 인용되며 이 게임의 이름을 게임을 해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퍼뜨렸습니다. 덕분에 제목은 유명하지만 정작 게임 내용은 모르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 유명세를 걷어 내고 보면 제로 윙은 성실하게 잘 만든 횡스크롤 슈팅입니다. 잡아서 던지는 한 가지 장치를 중심에 두고 스테이지 배치를 짜 놓았고, 두 사람이 함께 하면 한 명이 방패를 만들고 한 명이 화력을 넣는 식으로 역할이 갈립니다. 지금 다시 해 봐도 이 게임이 이름값만으로 남은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몇 판이면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