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 레이스
지피 레이스 (Traverse USA Zippy Race) · 1983 · Ir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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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두 번 바꾸는 레이싱
1983년 오락실 레이싱은 대체로 둘 중 하나였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코스를 도는 방식이거나, 뒤에서 차를 따라가며 앞으로 달리는 방식이거나. 지피 레이스는 이 두 가지를 한 게임 안에 넣었습니다. 처음에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화면으로 시작하고, 도중에 뒤에서 보는 화면으로 전환됩니다.
지금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당시에는 상당한 시도였습니다. 시점이 다르면 화면을 그리는 방식도, 조작하는 감각도 전혀 달라집니다. 하나의 기판에 사실상 두 개의 게임을 넣은 셈이라, 개발 부담이 그만큼 컸습니다.
미국 대륙을 횡단한다는 설정도 이 구성과 맞물립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까지 오토바이로 달린다는 큰 그림을 깔고, 구간마다 다른 화면으로 여정을 보여 줍니다. 한 판짜리 코스를 반복하는 대신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감각을 만들어 낸 것이 이 게임의 성격입니다.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지피 레이스(Zippy Race)는 오토바이를 몰아 앞차를 제치며 목표 지점까지 가는 레이싱입니다. 해외에서는 다른 제목으로 나왔습니다. 조작은 레버로 방향을 잡고 버튼으로 속도를 올리는 정도로, 배울 것이 거의 없습니다.
한 판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구간 끝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다하면 그대로 끝나니, 부딪히지 않고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다른 차와 닿으면 넘어지고, 넘어지면 다시 속도를 올리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이 손실이 곧 실패로 이어집니다.
도중에 연료가 줄어드는 요소도 있습니다. 무작정 달리는 것이 아니라 보급을 신경 써야 하니, 단순한 반사신경 게임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구조가 됩니다. 이 시절 게임치고는 챙길 것이 하나 더 있는 셈입니다.
두 시점을 다르게 대하는 법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간과 뒤에서 보는 구간은 요령이 다릅니다. 내려다보는 화면에서는 앞이 잘 보입니다. 다가오는 차의 위치를 미리 확인할 수 있으니, 빈 차선을 골라 미리 자리를 잡는 것이 정석입니다. 급하게 피하는 것보다 미리 비워 둔 길로 들어가는 쪽이 안전합니다.
뒤에서 보는 화면은 반대입니다. 앞이 좁게만 보이고, 앞차가 갑자기 커지면서 나타납니다. 여기서는 미리 계획하기보다 반응이 중요해집니다. 화면 가운데에 붙어 다니면 좌우 어느 쪽으로든 피할 수 있어 유리하고, 한쪽 끝에 붙어 있으면 피할 방향이 반으로 줄어듭니다.
초보자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속도를 계속 최고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빠를수록 반응할 시간이 줄어드는데, 시간에 쫓기다 보니 자꾸 밟게 됩니다. 부딪혀 넘어지면 오히려 시간을 더 잃으니, 차가 몰린 구간에서는 잠깐 속도를 줄이는 판단이 결과적으로 빠릅니다.
아이렘이라는 회사
아이렘은 나중에 알만한 이름을 여럿 남긴 회사입니다. 슈팅 쪽에서 특히 뚜렷한 색을 가졌고, 화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적과 촘촘하게 짜인 지형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1983년의 이 게임은 그런 색이 자리 잡기 훨씬 이전의 작품입니다.
초기 아이렘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만들어 보던 시기를 거쳤습니다. 그중 이 게임은 회사가 처음으로 널리 팔린 축에 드는 작품으로, 이후 사업을 이어 갈 발판이 되었습니다. 한 회사의 색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런 초기작에 닿게 됩니다.
기판 사정도 지금과는 다릅니다. 색을 마음껏 쓸 수 없고, 화면에 동시에 띄울 수 있는 물체 수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 게임의 그림이 단순하고 배경이 반복되는 것은 취향이 아니라 제약의 결과입니다. 그 안에서 시점 전환이라는 아이디어를 짜냈다는 점이 오히려 인상적입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1983년 게임이니 한국 오락실에서 이 기판을 직접 봤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이 게임은 이후 여러 기종으로 옮겨졌고, 특히 가정용 이식판을 통해 접한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오토바이로 미국을 횡단한다는 설정을 기억하는 사람도 그쪽 경로가 많습니다.
지금 해 보면 확실히 옛날 게임입니다. 그림은 소박하고, 소리는 단조롭고, 한 판은 금방 끝납니다. 그런데도 속도가 붙었을 때의 긴장감은 여전히 통합니다. 레이싱 게임이 가진 재미의 뼈대가 이미 여기서 완성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조작이 두 가지뿐이라 처음 잡아도 몇 초면 익숙해집니다. 40년 전 오락실 레이싱이 어땠는지 확인하는 데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