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이스 H.Q. (게임보이컬러)
체이스 H.Q.: 시크릿 폴리스 (Chase H Q Secret Police Eur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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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선이 없는 레이싱 게임
보통 레이싱 게임의 목표는 남보다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계열은 다릅니다. 결승선이 아예 없습니다. 대신 저 앞 어딘가에 도망치는 차 한 대가 있고, 제한 시간 안에 따라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따라잡은 다음이 더 중요합니다. 옆에 붙어 들이받아서 그 차를 멈춰 세워야 합니다.
무전으로 사건이 떨어지고, 차를 몰고 달려 나가고, 목표를 시야에 넣고, 몸으로 밀어붙여 세우는 흐름입니다. 경찰 드라마의 추격 장면 하나를 그대로 게임 규칙으로 바꿔 놓은 셈인데, 이 발상이 워낙 명쾌해서 원작 오락실판은 당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체이스 H.Q.(Chase H.Q.: Secret Police)는 경찰 차량을 몰고 도주 차량을 추격하는 레이싱 게임입니다. 화면은 차 뒤에서 앞을 내다보는 시점이고, 조작은 좌우 조향과 가속, 제동, 그리고 순간적으로 속도를 확 끌어올리는 부스터로 이루어집니다.
한 판은 두 단계로 나뉩니다. 앞 단계에서는 일반 차량들 사이를 헤치며 목표를 따라잡아야 하고, 목표가 시야에 들어오면 뒷 단계가 시작됩니다. 이때부터는 단순히 붙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차체를 부딪쳐 상대의 내구도를 깎아야 합니다. 시간이 다 되면 그대로 실패입니다.
여기 실린 것은 휴대용 기기로 나온 판입니다. 오락실의 큰 화면과 핸들 조종석이 주던 박력은 당연히 줄어들지만, 추격이라는 뼈대는 그대로 옮겨져 있습니다.
처음 하면 어디서 실패하나
가장 흔한 실패는 시간 부족입니다. 초보자는 다른 차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달리는데, 충돌을 피하는 데 신경 쓰다 보면 속도가 나지 않아 목표를 아예 따라잡지 못합니다. 이 게임에서는 어느 정도 부딪히는 것을 감수하고 계속 밟는 편이 결과적으로 유리합니다. 부딪히면 속도가 떨어지지만, 애초에 느리게 가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둘째는 부스터를 쓰는 시점입니다. 부스터는 횟수가 정해져 있어서 아무 때나 쓸 수 없습니다. 앞이 막혀 있는 구간에서 터뜨리면 바로 다른 차에 박고 끝납니다. 길이 넓게 뚫린 직선 구간에 들어섰을 때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셋째는 추격 단계에서의 위치 잡기입니다. 목표 차량은 이쪽을 떨쳐 내려고 좌우로 흔들며 달립니다. 그 움직임을 따라 붙으려다 보면 계속 헛치게 되는데, 상대가 흔드는 방향을 한 박자 먼저 읽고 그쪽으로 밀어붙여야 제대로 들어갑니다.
난이도가 크게 튀는 지점은 갈림길입니다. 화면이 두 갈래로 나뉘는 구간에서 잘못 고르면 시간만 낭비합니다. 처음에는 어느 쪽이 옳은지 알 수 없으니, 몇 번 실패하면서 길을 외우는 것이 정공법입니다.
타이토와 체감형 레이싱
타이토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로 오락실이라는 시장을 열어젖힌 회사이자, 1980년대 후반 체감형 기기 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오락실에서는 화면만 보여 주는 것을 넘어 몸으로 느끼게 만드는 기계들이 쏟아졌습니다. 자리가 기울고 흔들리는 좌석형 기기가 대표적입니다.
추격이라는 소재는 그런 기계와 궁합이 좋았습니다. 단순히 빨리 달리는 것보다 무언가를 쫓는다는 목적이 붙으면 긴장감이 훨씬 큽니다. 같은 시기의 다른 레이싱 게임들이 기록 단축에 집중했다면, 이쪽은 이야기가 있는 운전을 팔았던 셈입니다.
휴대용으로 옮겨 온 추격전
오락실 기기에서 좌석과 핸들을 빼고 작은 화면에 옮기면 아무래도 다른 물건이 됩니다. 도로가 다가오는 속도감이 줄고, 화면에 띄울 수 있는 차의 수도 적어집니다. 그래서 휴대용판들은 대체로 코스 구성을 단순하게 다듬고, 대신 조작 반응을 또렷하게 만드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오락실판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소박하게 느껴지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배우기 쉬운 입구가 됩니다. 한 판이 짧고 목표가 분명해서 몇 분만 잡아도 이 게임이 무엇을 파는 물건인지 알게 됩니다. 국내 오락실에서도 추격물은 꽤 인기를 끌었던 갈래라,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 기억이 되살아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