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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 퀴즈

캐시 퀴즈 (Cash Quiz Type B Version 5) · 1986 · Zilec-Zeni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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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기계인데 손이 빠를 필요가 없습니다. 화면에 질문이 뜨고 보기가 나열되면, 아는 것을 고르면 그만입니다. 반사신경도 조작 연습도 필요 없는 대신 아는 게 없으면 그 자리에서 끝납니다. 이 게임 앞에서는 오락실에서 제일 잘하는 아이도 어른에게 밀릴 수 있었는데, 그것이 이 부류 기계의 존재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Cash Quiz는 여러 분야의 상식 문제를 내고 보기 중에서 답을 고르게 하는 아케이드 퀴즈 게임입니다. 정답을 맞히면 다음 문제로 넘어가며 상금이 쌓이고, 틀리면 그때까지 쌓은 것을 잃습니다. 한 판의 흐름이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과 거의 같아서, 처음 보는 사람도 설명 없이 무엇을 하면 되는지 압니다.

캐시 퀴즈 보드·카드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6)

문제를 푸는 게임의 규칙

조작은 보기 번호를 고르는 것이 전부이고, 대신 제한 시간이 압박을 만듭니다. 답을 아는 문제라도 시간이 흐르는 것을 보면 손이 급해지고, 그러다 옆 번호를 누르는 실수가 나옵니다. 확실히 아는 문제일수록 오히려 침착하게 번호를 확인하고 누르는 편이 좋습니다.

모르는 문제를 만났을 때의 처신도 요령입니다. 시간을 다 쓰고도 못 맞히면 어차피 같은 결과이니, 보기 중에서 명백히 틀린 것을 먼저 지우고 남은 것 가운데 고르는 편이 확률이 높습니다. 문제 문장의 표현에서 힌트가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분야가 바뀌는 지점에서 성적이 갈립니다. 자기가 잘 아는 분야만 나오면 술술 넘어가지만, 낯선 분야가 연달아 나오면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이 기복이 퀴즈 게임의 재미이자 한계입니다.

문제가 문화를 탑니다

이 게임이 다루는 문제들은 영국 이용자를 향해 만들어졌습니다. 그곳 텔레비전 드라마, 지역 스포츠, 지리와 인물 같은 것들이 문제로 나옵니다. 만들어진 곳의 생활을 알고 있어야 풀리는 문제가 많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지역을 벗어나면 성립하기 어려운 게임이었습니다. 슈팅이나 액션 기계는 언어를 몰라도 어디서든 통했지만, 퀴즈 기계는 그 나라 사람에게만 재미를 줍니다. 퀴즈 게임이 각 나라별로 따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이 게임을 켜 보는 사람에게 이 점은 오히려 다른 흥미가 됩니다. 문제들이 그 시절 영국에서 무엇이 상식으로 통했는지를 그대로 보여 주는 기록처럼 읽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다 외우면 끝나는 기계

퀴즈 게임에는 근본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문제 수가 한정돼 있으니, 자주 하는 사람은 결국 답을 외워 버립니다. 그러면 게임이 아니라 암기 확인이 되고 손님은 떠납니다.

그래서 이런 기계들은 문제 묶음을 바꿔 가며 여러 판본으로 나오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 작품의 이름에 유형 구분이 붙어 있는 것도 그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같은 틀에 다른 문제를 담아 기계의 수명을 늘리려 한 것입니다.

버튼 몇 개와 글자만 있으면 되니 만드는 비용도 적게 들었습니다. 화려한 그래픽이 필요 없어 작은 업체도 뛰어들 수 있었고, 그 결과 1980년대에는 이런 퀴즈 기계가 술집과 오락실 구석에 꽤 놓여 있었습니다.

만든 곳과 국내 사정

질렉 제니톤은 1980년대 영국에서 오락실 기계를 만들던 회사입니다. 큰 회사들이 내놓는 화려한 기계와 겨루기보다, 자기 지역 이용자를 겨냥한 퀴즈 기계로 자리를 찾은 쪽에 가깝습니다. 비슷한 성격의 퀴즈 기계를 여럿 냈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 이 기계를 만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영어로 나오는 영국 상식 문제는 국내 손님이 풀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고, 애초에 국내에 들어올 이유가 없었습니다. 국내에서 퀴즈 게임이 자리를 잡은 것은 한참 뒤 한국어 문제를 담은 기계들이 나오면서였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국내 이용자에게 추억의 대상이라기보다, 다른 나라 오락실에서는 이런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창에 가깝습니다. 같은 시기 같은 동전을 넣고도 나라마다 전혀 다른 것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