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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HQ

퀴즈 HQ (Quiz H Q Japan) · 1990 · Ta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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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물 간판을 단 퀴즈 게임

오락실 퀴즈 게임은 대개 자기만의 세계를 새로 만들지 않습니다. 이미 손님이 알아보는 얼굴을 앞세워 문제를 풀게 하는 쪽이 훨씬 빠르기 때문입니다. 타이토가 1990년에 내놓은 이 기판도 그 방식을 택했습니다. 제목의 HQ는 타이토가 앞서 내놓았던 형사 액션 계열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고, 화면에 깔린 분위기 역시 범인을 쫓는 수사물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문제를 맞히는 행위가 곧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처럼 포장되는 구조입니다.

퀴즈 게임에서 이런 포장은 생각보다 큰 몫을 합니다. 문제만 연달아 던지면 손님은 금세 지루해집니다. 반면 '지금 나는 수사 중이고 이 문제를 놓치면 놓친다'는 상황이 얹히면, 똑같은 4지선다도 긴장감이 달라집니다. 퀴즈 HQ(Quiz H.Q.)는 그 얹기를 꽤 성실하게 해낸 축에 듭니다.

퀴즈 HQ 보드·카드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0)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조작은 단순합니다. 화면에 문제와 선택지가 뜨고, 제한 시간 안에 버튼이나 레버로 답을 고르면 됩니다. 맞히면 다음 문제로 넘어가고 틀리면 남은 기회가 깎입니다. 기회를 다 잃으면 게임이 끝나고, 동전을 더 넣으면 이어서 계속할 수 있습니다. 이 뼈대는 그 시절 일본산 퀴즈 기판 대부분이 공유하던 형태입니다.

중요한 건 시간입니다. 제한 시간이 짧아서 문제를 다 읽고 고민할 여유가 별로 없습니다. 아는 문제는 선택지를 훑는 순간 바로 손이 나가야 하고, 모르는 문제는 오래 붙들지 말고 찍어야 합니다. 초보자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모르는 문제 앞에서 시간을 다 쓰고, 결국 답도 못 고른 채 시간 초과로 오답 처리되는 것입니다. 4지선다는 찍어도 4분의 1이지만 시간 초과는 0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붙어서 하면 체감이 크게 달라집니다. 혼자서는 모르는 분야가 나오면 그대로 무너지지만, 둘이 붙으면 아는 분야가 서로 달라 훨씬 오래 버팁니다. 실제로 이런 기판 앞에는 혼자보다 두세 명이 모여 있는 모습이 흔했습니다.

퀴즈 HQ 보드·카드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90)

일본어라는 벽

이 게임을 국내에서 즐기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난이도가 아니라 언어입니다. 문제와 선택지가 모두 일본어로 나오고, 소재 역시 일본의 방송·연예·시사·상식에 크게 기대고 있습니다. 일본어를 읽을 수 있어도 그 시절 일본에서만 통하던 화제가 나오면 답을 고를 근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국내 오락실에서 일본어 퀴즈 기판은 대체로 오래 자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대전 격투나 슈팅은 글자를 못 읽어도 손이 알아서 하지만, 퀴즈는 읽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업주 입장에서도 회전이 안 되는 기판이라 들여놓기를 꺼렸습니다. 이 계열의 게임들이 일본에서는 한 시대를 이룰 만큼 쏟아졌는데도 한국에서는 거의 흔적이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금 이 게임을 만나는 방식은 오히려 그때보다 낫습니다. 급하게 동전을 넣을 필요가 없으니, 문제 화면을 천천히 뜯어보며 그 시절 일본 오락실 손님들이 무엇을 상식이라고 여겼는지 구경하는 재미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타이토와 퀴즈 기판의 시대

타이토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로 오락실이라는 업태 자체를 만들어낸 회사입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 사이 이 회사는 대형 히트작 한두 개로 버티는 대신, 온갖 장르를 다양하게 찍어내는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퍼즐도 내고 액션도 내고 레이싱도 내고, 그 사이에 이런 퀴즈 기판도 여럿 끼워 넣었습니다.

퀴즈 기판은 제작사 입장에서 효율이 좋은 상품이었습니다. 화려한 그래픽이나 복잡한 물리 연산이 필요 없고, 대부분의 개발비가 문제 데이터를 모으고 다듬는 데 들어갑니다. 기존에 만들어둔 기판 위에 문제 묶음과 껍데기만 바꿔 얹으면 새 게임 한 편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 일본 오락실에는 비슷한 구조의 퀴즈 게임이 놀랄 만큼 많이 깔려 있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 장르는 수명이 짧았습니다. 문제를 다 풀어본 손님에게는 두 번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액션 게임은 실력이 늘면 더 깊이 들어가지만, 퀴즈는 답을 외우는 순간 게임이 끝납니다. 90년대 중반 이후 이 장르가 급격히 줄어든 것도 그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해볼 만한 이유

결국 이 게임은 잘 만든 액션 게임처럼 손맛으로 붙잡는 물건은 아닙니다. 그 대신 다른 것을 줍니다. 1990년 무렵 일본 오락실 한구석에 놓여 있던 기계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형사물 껍데기를 쓴 4지선다가 어떤 식으로 손님을 붙들려 했는지가 화면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다면 한 판 붙잡고 얼마나 버티는지 시험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전혀 못 읽어도 상관없습니다. 선택지 네 개 중 하나를 찍는 게임이니, 운에 맡기고 어디까지 가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한 판은 굴러갑니다. 그 시절 오락실이 얼마나 다양한 물건으로 채워져 있었는지 확인하는 표본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