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보
터보 (Turbo Program 1513 1515) · 1981 · S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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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내 차를 따라가는 화면
지금은 레이싱 게임이라고 하면 당연히 차 뒤를 따라가는 시점을 떠올립니다. 내 차가 화면 아래쪽에 있고, 도로가 앞으로 뻗어 나가며, 앞차들이 점점 커지면서 다가오는 그 화면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처음부터 당연했던 건 아닙니다. 터보가 나온 무렵의 레이싱 게임은 대부분 위에서 내려다보는 화면이었습니다. 도로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좌우로 차를 옮기는 방식이었지요.
터보는 그 흐름을 바꾼 축에 드는 게임입니다. 화면 안쪽 소실점에서 도로가 흘러나오고, 길이 휘면 화면 전체가 따라 휘고, 도로변의 건물과 나무가 옆으로 밀려 나갑니다. 지금 보면 소박하지만, 이 화면을 처음 본 사람에게는 진짜로 차에 타고 있는 것 같은 감각이었습니다.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터보(Turbo)는 정해진 코스를 달리며 앞서가는 차들을 추월해 나가는 레이싱 게임입니다. 순위 경쟁이라기보다는 버티기 싸움에 가깝습니다. 남은 시간이 계속 줄어들고, 체크포인트를 통과하면 시간이 얼마간 보충됩니다. 제때 통과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판이 끝납니다.
조작은 핸들과 가속, 그리고 기어입니다. 저단과 고단을 바꿔 가며 달리는데, 고단으로 올리면 훨씬 빨라지지만 그만큼 차를 세우거나 방향을 틀기가 어려워집니다. 앞이 트인 직선에서는 고단으로 밀어붙이고, 차가 뭉쳐 있거나 길이 휘는 구간에서는 저단으로 내려 빠져나가는 판단이 이 게임의 핵심입니다.
부딪히면 차가 부서지고 남은 차가 하나 줄어듭니다. 시간이 촉박하다고 무작정 밟으면 사고가 나고, 사고가 나면 다시 속도를 올리는 데 시간이 더 걸립니다. 결국 빨리 가려고 서두르는 것이 오히려 느려지는 구조입니다.
계속 바뀌는 풍경이 곧 난이도입니다
달리다 보면 배경이 계속 바뀝니다. 탁 트인 시골길을 달리다가 건물이 늘어선 시가지로 들어가고, 터널로 들어가 어두워지기도 하고, 다리 위를 지나기도 합니다. 화면이 바뀌는 재미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이 변화가 실제로 운전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트인 곳에서는 길이 어디로 휘는지 미리 보입니다. 그런데 시가지나 좁은 구간에서는 시야가 막혀 앞이 늦게 보이고, 앞차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두운 구간에서는 아예 앞차가 코앞에 올 때까지 잘 안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구간에서는 속도를 미리 낮춰 두는 게 결과적으로 빠릅니다.
노면 상태가 달라지는 구간도 있습니다. 미끄러운 곳에서는 평소대로 핸들을 꺾으면 차가 원하는 만큼 돌지 않고 흘러 나갑니다.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이 구간에서 어이없이 벽을 들이받기 쉽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지점
가장 흔한 실패는 고단을 붙들고 놓지 않는 것입니다. 시간이 계속 줄어드니 빠르게 가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는데, 고단 상태에서 차가 몰린 구간에 들어가면 피할 틈이 없습니다. 앞차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려면 최소한의 여유가 필요하고, 그 여유는 속도를 조금 낮춰야 생깁니다.
또 하나는 차선을 자주 바꾸는 습관입니다. 앞차가 보일 때마다 좌우로 크게 움직이면 오히려 다른 차와 부딪히기 쉽습니다. 한 차선을 기준으로 잡고 필요한 만큼만 살짝살짝 옮기는 쪽이 안정적입니다. 도로 가장자리도 위험합니다. 바깥으로 너무 붙으면 길이 휘는 순간 그대로 이탈합니다.
오래된 레이싱 게임의 맛
요즘 레이싱 게임에 익숙한 사람이 보면 화면도 조작도 단출합니다. 그런데 몇 판 하다 보면 왜 이 게임이 당시에 그렇게 인기를 끌었는지 알게 됩니다. 속도감이 정직하고, 기어를 올리고 내리는 판단이 곧바로 결과로 돌아오고, 한 판이 짧아 부담이 없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도 이런 형태의 주행 게임은 한동안 꾸준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커다란 핸들이 달린 기계 앞에 앉는 것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었고, 잘하는 사람이 붙으면 뒤에 구경꾼이 서기도 했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그 시절 오락실의 감각이 꽤 선명하게 되살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