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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롤러

톱 롤러 (Top Roller) · 1984 · Jale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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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스케이트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 건너온 롤러장 문화가 일본과 한국까지 번지면서 한동안 젊은 사람들의 주말이 롤러장에 있었습니다. 오락실 업계가 그 유행을 놓칠 리 없었고, 자동차 대신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코스를 달리는 게임이 그렇게 나왔습니다. 톱 롤러는 그 흐름 위에 서 있는 게임입니다. 자동차 레이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몸싸움이 승부를 가르는, 조금 험한 경주입니다.

톱 롤러(Top Roller)는 롤러스케이트를 신은 선수를 조종해 제한 시간 안에 결승선까지 달리는 경주 액션 게임입니다. 오락실 기판으로 먼저 나온 뒤 MSX로 옮겨졌고, 그래서 한 판이 짧고 규칙이 단순한 오락실식 구조를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톱 롤러 레이싱 게임 화면 1 - MSX (1984)

부딪쳐서 이기는 경주

이 게임을 처음 하면 보통 당황합니다. 앞만 보고 잘 달리고 있는데 옆에서 다른 선수가 툭 밀어 코스 밖으로 튕겨 나가기 때문입니다. 이 게임에서 다른 주자는 단순히 앞서가는 경쟁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를 밀어내려는 방해물이고, 반대로 나도 상대를 밀어 코스 밖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단 경로로 달리는 것이 늘 정답이 아닙니다. 앞에 여러 명이 몰려 있으면 억지로 파고들기보다 한 박자 늦춰 옆으로 빠지는 편이 시간을 아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딪히면 균형이 무너지고, 다시 속도를 붙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우회하는 시간보다 길기 때문입니다.

시간 제한도 압박입니다. 살아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해야 하므로, 조심스럽게 가는 것과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 사이에서 계속 저울질하게 됩니다. 이 균형 감각이 이 게임의 재미입니다.

톱 롤러 레이싱 게임 화면 2 - MSX (1984)

코스에 놓인 것들

코스에는 순수한 경쟁자 말고도 여러 가지가 놓여 있습니다.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 건너야 하는 물길, 그리고 일반 통행 차량까지 섞여 있어서 무대가 단조롭지 않습니다. 위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구간도 있어 앞만 보다가는 낭패를 봅니다.

이런 요소들은 대체로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즉 처음 갈 때는 얻어맞지만 두세 번 반복하면 어디서 무엇이 나오는지 외워집니다. 이 시절 오락실 게임 대부분이 그랬듯, 실력이 는다는 것은 반사신경이 좋아진다기보다 코스를 외운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혼자 하는 것과 둘이 하는 것의 느낌도 꽤 다릅니다. 둘이 하면 서로 밀어내는 재미가 붙어서, 정작 결승선보다 옆 사람을 코스 밖으로 보내는 데 더 열을 올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만든 곳과 MSX 이식 이야기

이 게임을 만든 곳은 오랫동안 오락실 기판을 내던 일본 업체로, 훗날 야구 게임과 액션 게임으로 이름을 더 알리게 됩니다. 이 시기 이 회사는 커다란 대작보다 한 가지 아이디어를 잡아 짧게 굴리는 기판을 자주 내놓았고, 톱 롤러도 그런 성격의 물건입니다.

MSX로 옮기면서 화면 표현은 당연히 줄었습니다. 오락실 기판에 비해 색이 적고 스프라이트 표현에도 제약이 많은 기계라, 원본의 속도감을 그대로 살리기는 어려웠습니다. 대신 카트리지 하나로 집에서 계속 붙들 수 있다는 점이 있었습니다. 오락실 한 판에 동전 하나가 들어가던 시절, 이식판의 가치는 그래픽이 아니라 무한히 반복할 수 있다는 데 있었습니다.

지금 잡아 보면

처음 몇 판은 답답할 수 있습니다. 조작이 미끄러지듯 반응하고, 원하는 대로 서지 않으며, 부딪히면 손해가 큽니다. 그런데 이 미끄러짐이 실은 의도된 것입니다. 롤러스케이트를 표현하려는 감각이고, 이걸 받아들이고 나면 미리 방향을 잡아 두는 식으로 몸을 쓰게 됩니다.

한국에서 이 게임이 특별히 유명해지지는 않았습니다. 국내 MSX 사용자들이 기억하는 목록의 앞자리는 대체로 몇 년 뒤 나온 코나미 카트리지들이 차지했고, 이런 초기 이식작은 대여점 선반 구석에 꽂혀 있다가 다른 게 없을 때 집어 오던 부류였습니다.

그래도 몇 판 해 보면 이 시대 오락실이 무엇을 재미로 여겼는지가 분명히 보입니다. 복잡한 시스템도, 긴 이야기도 없이 그저 달리고 부딪치는 것만으로 한 판을 성립시키던 시절의 감각입니다. 짧게 끊어서 즐기기에는 지금도 나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