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4
릿지 레이서 타입 4 (Ridge Racer Type 4) · 1998 · Nam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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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지는 항구를 달리는 레이싱
이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꺼내는 이야기는 대개 색입니다. 해질녘 주황빛으로 물든 항만, 푸른 저녁의 도심 고가, 밤바다를 끼고 도는 해안도로. 폴리곤 성능으로 승부하던 시절에 이 게임은 조명과 색조로 승부를 걸었고, 그 결과 플레이스테이션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메뉴 화면조차 공을 들였습니다. 미니멀한 서체와 절제된 배경, 그리고 잔잔하게 깔리는 재즈와 하우스 사이의 음악. 게임을 켜 놓고 메뉴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몇 안 되는 작품입니다.
시리즈에 이야기를 들여오다
R4(Ridge Racer Type 4)는 남코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낸 릿지 레이서 시리즈의 네 번째 정식 작품입니다. 이전까지 이 시리즈는 코스와 차와 드리프트만 있는 순수한 레이싱이었는데,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이야기가 들어옵니다. 그랑프리 한 시즌을 치르는 드라이버가 되어 팀에 소속되고, 감독과 대화하며 시즌을 끌고 갑니다.
선택할 수 있는 팀은 네 곳입니다. 각 팀마다 감독의 성격과 사연이 다르고, 성적에 따라 대화 내용과 결말이 달라집니다. 레이싱 게임에 이런 층을 얹은 시도는 당시로서는 드물었고, 지금 봐도 담백하게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320대의 차량이라는 숫자
이 게임의 상징적인 숫자가 320입니다. 네 팀과 네 자동차 제조사를 조합하는 구조인데, 어떤 팀에 들어가 어떤 제조사의 차를 타느냐에 따라 다른 차량 계보가 열리고, 시즌을 진행하며 성적에 따라 차가 단계적으로 성장합니다. 그래서 한 번의 플레이로는 극히 일부만 만져 보게 되고, 다른 조합을 보려면 다시 시즌을 돌아야 합니다.
차의 성격도 갈립니다. 그립 위주로 코너를 파고드는 타입과, 뒤를 시원하게 흘리며 도는 드리프트 타입이 나뉘어 있어서 같은 코스라도 공략법이 달라집니다. 자기 주행 습관에 맞는 계열을 찾는 것이 첫 과제입니다.
코스와 공략
수록 코스는 여덟 개이고, 각각 짧은 순환 코스부터 긴 복합 코스까지 성격이 다릅니다. 대체로 코너의 연결이 촘촘해서, 하나를 잘 돌아도 다음 코너 진입 자세가 틀어지면 연쇄적으로 무너집니다. 그래서 한 코너만 보지 말고 두세 개를 묶어 라인을 그리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드리프트 조작은 시리즈 전통대로입니다. 진입 직전 브레이크를 짧게 끊고 액셀을 유지한 채 카운터를 잡습니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그립 타입 차량이 추가되면서, 미끄러뜨리지 않고 라인을 좁게 파고드는 정통 레이싱 주행도 가능해졌습니다. 두 방식을 다 익히면 어떤 코스든 대응할 수 있습니다.
시리즈의 정점으로 꼽히는 이유
R4는 릿지 레이서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자주 꼽힙니다. 시리즈 특유의 시원한 드리프트를 유지하면서, 팀과 시즌이라는 구조로 반복 플레이의 이유를 만들었고, 여기에 미술과 음악의 감각을 얹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하나가 튀는 게 아니라 전체가 하나의 분위기로 묶여 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 세대가 저물어 가던 시점에 나온 작품이라, 이 기기로 할 수 있는 것을 끝까지 밀어붙인 마지막 세대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지금 다시 켜도 그 노을빛 항만 코스만큼은 여전히 근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