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맨 2
레이맨 2 (Rayman 2 the Great Escape) · 2000 · Ubisoft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팔과 다리가 몸에 붙어 있지 않은 주인공
레이맨에게는 어깨도 없고 무릎도 없습니다. 주먹과 발만 몸통 주변에 둥둥 떠 있고 그 사이는 그냥 비어 있습니다. 원래는 2D 시절에 캐릭터 애니메이션 용량을 줄이려고 짜낸 궁여지책에 가까웠는데, 3D로 넘어오면서 이 이상한 생김새가 오히려 이 게임만의 무기가 됐습니다. 팔이 없으니 주먹을 로켓처럼 쏘아 보내고, 머리카락을 프로펠러처럼 돌려 허공을 천천히 내려오고, 손과 발을 따로 벽에 붙여 절벽을 기어오릅니다.
레이맨 2(Rayman 2: The Great Escape)는 그 레이맨을 3차원 공간에 옮겨 놓은 액션 플랫포머입니다. 로봇 해적단이 세계를 지탱하던 심장을 깨뜨리면서 그 안에 있던 빛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붙잡혀 감옥선에 갇혀 있던 레이맨이 탈출해 그 빛을 하나씩 되찾아 오는 이야기입니다. 흩어진 노란 빛 조각을 줍고, 우리에 갇힌 작은 종족을 풀어 주고, 신전마다 숨겨진 가면을 찾아 잠든 창조자를 깨우는 것이 전체 흐름입니다.
그래서 손맛이 같은 시기의 다른 3D 액션과 확실히 다릅니다. 밟아서 적을 처리하는 게임도 아니고 총을 겨누는 게임도 아닙니다. 주먹을 잠깐 모았다가 쏘고, 활공으로 거리를 재고, 공중에 떠 있는 보라색 고리에 주먹을 걸어 그네처럼 건너가는 게임입니다.
한 판이 굴러가는 방식
레벨은 넓은 놀이터라기보다 잘 짜인 길에 가깝습니다. 길을 따라 가면서 빛 조각을 줍고, 중간에 놓인 잠금 장치를 풀고, 마지막에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는 구조입니다. 빛 조각을 일정 개수 이상 모으지 않으면 뒤쪽 관문이 열리지 않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만 대충 줍고 지나가면 나중에 앞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능력도 조금씩 늘어납니다. 처음에는 주먹 하나로 시작하지만, 진행하면서 주먹을 모아 강하게 쏘는 법, 물 위를 신발로 미끄러지듯 달리는 법, 벽을 타고 오르는 법을 차례로 얻습니다. 갈 수 없었던 곳이 능력 하나로 열리는 구성이라, 앞 지역을 다시 지나갈 때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체력은 작은 구슬 형태로 표시되고 맞을 때마다 하나씩 줄어듭니다. 회복 지점이 넉넉한 편은 아니어서, 적을 정면으로 상대하기보다 주먹으로 거리를 두고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는 편이 편합니다.
기억에 남는 구간들
이 게임이 지루해지지 않는 이유는 중간중간 이동 수단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용암 위를 둥둥 뜬 열매에 올라타 건너뛰는 늪지대, 커다란 껍데기에 올라타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구간, 로켓에 매달려 좁은 통로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구간이 차례로 나옵니다. 조작이 매번 조금씩 달라지는데도 손에 금방 붙습니다.
악몽의 동굴은 분위기부터 다릅니다. 어둡고 축축한 길을 한참 내려가 그곳의 주인과 붙고 나면, 무너지는 길을 되짚어 빠져나와야 합니다. 처음 만나면 당황하기 좋은 구간이라 여기서 한 번씩 크게 막힙니다.
후반의 해적 기지와 감옥선은 색이 확 바뀝니다. 나무와 물로 이루어진 앞부분과 달리 철판과 기계로 가득한 공간이고, 순찰하는 로봇 해적을 피해 움직여야 하는 조심스러운 구간이 이어집니다. 마지막에는 거대한 기계에 올라탄 해적 두목과 붙습니다.
처음 하면 막히는 곳
가장 큰 벽은 적이 아니라 카메라입니다. 이 시절 3D 게임이 대개 그렇듯 좁은 통로나 벽에 붙었을 때 시점이 튀는 일이 있습니다. 급할수록 캐릭터를 벽에서 한 발 떼어 놓고 시점을 정리한 다음 움직이는 편이 안전합니다.
활공은 만능이 아닙니다. 머리카락을 돌리면 낙하 속도가 느려질 뿐 앞으로 나아가는 힘은 크지 않아서, 점프하는 순간의 도약 거리가 사실상 전부입니다. 먼저 최대한 멀리 뛰고 그다음에 활공을 켜야 건너갈 수 있는 자리가 여럿 있습니다.
주먹을 모아 쏘는 강한 사격은 방향 전환이 안 되니 움직이는 표적에는 약한 사격을 연달아 쏘는 쪽이 낫습니다. 반대로 멀리 있는 스위치나 단단한 자물쇠에는 모아 쏘기가 필요합니다. 이 둘을 상황에 맞춰 나눠 쓰는 것이 이 게임의 기본기입니다.
플레이스테이션판이라는 다른 물건
레이맨 2는 여러 기종으로 나왔고, 그중 플레이스테이션판은 사실상 다시 만들어진 판본입니다. 기기 성능에 맞춰 지형을 다듬고 레벨 구성을 손봤으며, 다른 판본에는 없는 연출과 장면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다른 기종으로 먼저 해 본 사람도 처음 보는 길을 만나게 됩니다.
화면의 밀도는 아무래도 원판보다 헐겁고 시야도 짧습니다. 대신 이 기기에서 낼 수 있는 것을 알뜰하게 짜낸 결과물이라 당시 기준으로는 잘 만든 이식이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조작이 조금 미끄럽게 느껴지지만 길을 익히면 금방 적응합니다.
한국에서의 자리
레이맨이라는 이름은 국내에서 오락실보다 컴퓨터를 통해 먼저 알려진 편입니다. 화려한 색감의 2D 레이맨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고, 그 캐릭터가 3차원으로 넘어왔다는 점이 이 작품을 보는 첫인상이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실제 언어가 아니라 알아들을 수 없는 지어낸 말로 떠든다는 점도 한몫했습니다. 대사를 못 읽어도 손짓과 표정만으로 상황이 전달되기 때문에, 설명서 없이 붙잡고 앉아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감이 옵니다. 언어의 벽이 높던 시절에 이런 게임은 그 자체로 장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