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드라이빙
레이스 드라이빙 (Race Drivin Cockpit REV 5) · 1990 · Atari G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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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에서 처음 본 진짜 3D
1990년 무렵 오락실 레이싱 게임은 대부분 스프라이트를 확대하고 축소해서 속도감을 만들어 냈습니다. 도로는 좌우로 휘어질 뿐 실제로 오르내리지는 않았고, 코스는 화면에 그려진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달랐습니다. 도로도 언덕도 다리도 전부 다각형 면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차가 그 위를 실제로 넘어 다녔습니다.
그 차이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코스 중간의 곡예 구간입니다. 도로가 통째로 한 바퀴 도는 루프가 있고, 공중으로 솟았다 떨어지는 점프대가 있습니다. 스프라이트 방식으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지형입니다. 속도가 모자라면 루프 꼭대기에서 그대로 미끄러져 떨어지고, 너무 빠르면 점프대에서 코스 밖으로 날아갑니다. 도로가 진짜 입체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려 주는 구간이었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레이스 드라이빙(Race Drivin')은 아타리 게임즈가 1990년에 내놓은 아케이드 운전 게임입니다. 1인칭 시점으로 운전대를 잡고 정해진 코스를 도는 것이 기본이고, 제한 시간 안에 구간을 통과하면 시간이 더 주어지는 방식으로 한 판이 이어집니다. 시간을 다 쓰면 그대로 끝납니다.
중요한 것은 이 게임이 다루는 것이 경주라기보다 운전 그 자체라는 점입니다. 차는 무게가 있고, 관성이 있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앞으로 쏠립니다. 코너에 그대로 들어가면 미끄러지고, 잘못 부딪히면 차가 뒤집힙니다. 이 시절 대부분의 오락실 레이싱이 벽에 스치면 속도만 줄고 마는 것과 견주면, 훨씬 까다롭고 훨씬 진지한 물건이었습니다.
처음 하면 왜 자꾸 뒤집히나
처음 잡은 사람이 겪는 일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액셀을 끝까지 밟고 첫 코너에 도착해서, 그대로 코스 밖으로 나갑니다. 그다음에는 겁이 나서 속도를 너무 줄이다가 시간에 쫓깁니다. 이 게임의 요령은 코너 앞에서 미리 감속하고, 코너 안에서는 오히려 액셀을 조금씩 다시 넣는 것입니다. 코너 한가운데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균형을 잃습니다.
곡예 구간은 반대로 속도가 부족해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루프에 들어가기 전 직선에서 충분히 가속해 두어야 원심력으로 천장을 지나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겁이 나 브레이크에 발을 얹으면 거의 확실히 떨어집니다. 점프대도 마찬가지로, 어정쩡한 속도가 가장 나쁩니다.
변속을 고를 수 있다면 처음에는 자동을 권합니다. 이 게임은 운전 자체가 이미 어렵기 때문에, 수동 변속까지 얹으면 코너 진입 타이밍을 잡을 여유가 사라집니다. 코스를 외우고 감속 지점이 몸에 붙은 다음에 수동으로 넘어가는 순서가 편합니다.
아타리와 하드 드라이빙의 뒤를 이어
이 게임은 아타리가 앞서 내놓은 폴리곤 운전 게임의 후속작입니다. 앞 작품이 오락실에 실시간 폴리곤 3D를 들여온 사건이었다면, 이 작품은 그 위에 코스와 차종을 늘리고 조작을 다듬은 확장판 성격입니다. 기본 뼈대는 같지만 달릴 곳이 늘었고, 선택지가 생겼습니다.
대가는 속도였습니다. 당시 하드웨어로 실시간 폴리곤을 그리는 일은 대단히 무거운 작업이라, 화면이 부드럽게 흐르지 않고 뚝뚝 끊기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같은 시기 스프라이트 방식 레이싱들이 훨씬 매끄럽게 보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계열은 화려함으로 손님을 끄는 쪽이 아니라, 진짜 운전을 다뤄 보고 싶은 사람이 찾는 쪽이었습니다.
아타리 게임즈는 미국 오락실 산업의 뿌리에 해당하는 이름입니다. 일본 회사들이 시장을 주도하던 1980년대 후반에도 독자적인 기술 노선을 고집했고, 폴리곤 3D를 오락실에 앉힌 것이 그 대표적인 결과였습니다. 이후 오락실 레이싱이 통째로 3D로 넘어간 흐름을 생각하면, 이 계열이 열어 둔 문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국내 오락실과 지금
국내에서 이 게임은 흔한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운전대와 페달, 변속기가 달린 전용 통이 필요했고, 큰 것은 좌석까지 붙은 형태라 자리를 많이 차지했습니다. 동전 값도 일반 기판보다 비싸게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큰 오락실 입구 쪽에 한 대쯤 놓여 구경거리 노릇을 하던 종류에 가깝습니다.
지금 브라우저에서 켜 보면 각진 폴리곤과 단순한 색면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몇 바퀴 돌다 보면 이 게임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가 분명해집니다. 화려한 그림이 아니라 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흉내 내려던 물건입니다. 그 목표만큼은 30년이 지나도 낡지 않아서, 코너 하나를 깨끗하게 빠져나갔을 때의 만족감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