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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싱 비트

레이싱 비트 (Racing Beat World) · 1991 · Ta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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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런 이후 레이싱이 걸어간 길

1986년 아웃런이 나온 뒤로 오락실 레이싱은 한동안 하나의 공식을 따랐습니다. 차 뒤에서 따라가는 시점, 굽이치는 도로, 흘러가는 배경, 그리고 체크포인트를 지날 때마다 늘어나는 시간. 5년 뒤에 나온 이 게임도 그 공식 위에 서 있습니다. 다만 5년 사이에 기판 성능이 크게 올라갔고, 화면에 뿌릴 수 있는 것도 훨씬 많아졌습니다.

타이토는 이 무렵 자체 기판을 계속 갈아 끼우며 표현력을 밀어붙이던 회사였습니다. 도로가 접히고 휘어지는 표현, 차가 기울 때 화면이 같이 기우는 감각 같은 것이 이 시기 레이싱 게임의 자랑거리였고, 그 경쟁의 한복판에서 나온 작품입니다.

레이싱 비트 레이싱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1)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레이싱 비트(Racing Beat)는 정해진 코스를 제한 시간 안에 달리는 레이싱입니다. 순위를 다투는 요소가 있어도 핵심은 시간입니다. 출발할 때 시간이 주어지고, 그 시간이 0이 되면 차가 어디에 있든 게임이 끝납니다. 다음 체크포인트를 통과하면 시간이 조금 더 붙고, 그 시간으로 또 다음 구간을 갑니다.

조작은 핸들과 액셀, 브레이크, 그리고 변속입니다. 이 시기 오락실 레이싱은 대개 고단과 저단 두 단계만 쓰는 변속을 넣었습니다. 직선에서는 고단으로 최고 속도를 내고, 급한 커브 앞에서는 저단으로 내려 차를 다시 붙잡는 식입니다. 조작이 단순한데도 손이 바빠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앞에는 다른 차들이 달립니다. 이들은 경쟁 상대라기보다 움직이는 장애물에 가깝습니다. 부딪히면 속도가 확 죽고, 심하면 차가 돌아 버립니다. 이 시기 레이싱에서 실력의 절반은 커브를 도는 기술이고, 나머지 절반은 앞차를 어느 쪽으로 비켜 갈지 미리 정하는 판단입니다.

레이싱 비트 레이싱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91)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실수는 브레이크를 안 쓰는 것입니다. 액셀만 밟고 커브에 들어가면 차가 바깥으로 밀려나 도로를 벗어나고, 그러면 속도가 크게 떨어져 시간을 통째로 날립니다. 오히려 커브 직전에 아주 짧게 감속했다가 곡선 안쪽부터 다시 밟는 편이 결과적으로 빠릅니다.

두 번째는 차선 선택입니다. 커브가 오면 그 커브의 안쪽 차선에 미리 붙어 있어야 합니다. 커브에 들어간 뒤에 안쪽으로 파고들려 하면 이미 늦었고, 그 과정에서 앞차와 부딪히기 쉽습니다. 도로가 어느 쪽으로 휘는지는 화면 저 위쪽에서 먼저 보이니, 시선을 차 바로 앞이 아니라 멀리 두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난이도가 튀는 자리는 체크포인트 직전 구간입니다. 남은 시간이 몇 초뿐일 때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부딪히는 일이 잦은데, 이럴 때는 앞차를 추월하려 하지 말고 뒤에 붙어서 안전하게 통과하는 쪽이 나은 경우도 많습니다. 한 번 부딪히면 회복에 드는 시간이 추월로 버는 시간보다 훨씬 큽니다.

타이토라는 회사

타이토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로 오락실 산업의 판을 처음 키운 회사입니다. 그 뒤로도 버블 보블, 다라이어스 같은 굵직한 작품을 내면서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오락실의 큰 축을 담당했습니다. 슈팅과 퍼즐, 액션에 걸쳐 폭이 넓었고, 자체 기판을 꾸준히 만들어 온 것도 특징입니다.

다만 레이싱에서는 세가나 남코만큼 이름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이 시기 오락실 레이싱은 큰 캐비닛과 체감 장치에 돈을 얼마나 쓸 수 있느냐가 승부를 갈랐고, 그 경쟁이 특히 치열했습니다. 잘 만들어진 게임이라도 옆자리에 더 화려한 기계가 놓이면 손님을 뺏겼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는

핸들 달린 앉는 기계는 국내에서도 늘 인기였지만, 대수가 적었습니다.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값이 비싸서 큰 오락실에만 한두 대 있었고, 그러다 보니 늘 순서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알려진 몇몇 레이싱 게임에 자리가 몰렸고, 이 게임처럼 이름이 덜 퍼진 작품은 상대적으로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지금 브라우저에서 해 보면 그 시절 레이싱의 골격이 오히려 또렷하게 보입니다. 화려한 캐비닛이 빠지고 나면 남는 것은 도로를 읽고 커브를 도는 기본기인데, 이 게임은 그 기본기를 요구하는 방식이 꽤 정직합니다. 몇 판 돌리다 보면 어느 구간에서 왜 시간을 잃었는지가 머릿속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