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드래곤
세인트 드래곤 (Saint Dragon SET 1) · 1989 · Jale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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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로 만든 용을 조종합니다
슈팅 게임에서 내가 모는 것은 대개 전투기입니다. 세인트 드래곤은 여기서 벗어납니다. 조종하는 것이 금속으로 된 용입니다. 머리가 앞장서고 그 뒤로 마디로 이어진 긴 몸통이 따라옵니다. 이 몸통이 이 게임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몸통 마디는 적의 탄을 막아 냅니다. 즉 방패가 내 몸에 붙어 있고, 그 방패가 내가 움직인 궤적을 따라 흐릅니다. 위로 크게 움직였다가 내려오면 꼬리는 아직 위쪽에 남아 있고, 그 시간차가 곧 방어 범위가 됩니다. 다른 슈팅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감각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세인트 드래곤(Saint Dragon)은 가로로 스크롤하는 슈팅입니다.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화면을 따라 전진하며 적을 쏘고, 구간 끝에서 거대한 보스를 상대합니다. 아이템을 먹으면 탄이 강해지고 몸통이 길어집니다. 조작은 이동과 발사가 중심이라 처음 잡아도 헤맬 일이 없습니다.
배경은 기계와 생물이 뒤섞인 모습입니다. 금속 관과 톱니 사이로 유기물처럼 생긴 것들이 자라 있고, 보스도 기계인지 생물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형태로 나옵니다. 1980년대 후반 슈팅이 즐겨 쓰던 화풍이지만, 주인공이 용이라는 설정과 맞물려 다른 게임보다 이 분위기가 훨씬 진하게 나옵니다.
꼬리를 쓰는 법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꼬리를 잊는 것입니다. 머리만 보고 피하다 보면 정작 꼬리가 어디 있는지 모른 채 진행하게 됩니다. 반대로 꼬리를 의식하기 시작하면 게임이 달라집니다.
기본은 이렇습니다. 탄이 여러 발 날아오는 구간에서는 그 방향으로 한 번 몸을 움직였다가 빠져나옵니다. 그러면 꼬리가 그 자리를 지나가면서 탄을 대신 받아 줍니다. 좁은 통로에서는 몸을 세로로 세우지 말고 눕혀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위아래로 크게 흔들면 몸통이 지형에 걸리기 쉽습니다.
몸통이 길수록 방어는 좋아지지만 좁은 지형에서는 부담이 됩니다. 길이를 유지하려면 아이템을 챙겨야 하는데, 아이템을 먹으러 무리하다 죽으면 그때부터는 짧은 몸으로 버텨야 합니다. 이 균형을 어디서 잡느냐가 실력 차이로 나옵니다.
어디서 난이도가 튀는가
앞부분은 비교적 순합니다. 문제는 중반 이후 지형이 좁아지는 구간입니다. 여기서는 적보다 벽이 무섭습니다. 몸통 전체가 판정을 가지므로, 머리가 무사히 지나간 길이라도 꼬리가 늦게 따라오다 걸릴 수 있습니다. 급하게 방향을 꺾지 말고 완만하게 도는 것이 요령입니다.
보스는 대체로 약점이 정해져 있습니다. 아무 데나 쏘면 잘 들어가지 않으므로, 첫 판은 약점 위치를 찾는 데 쓴다고 생각하는 편이 마음이 편합니다. 위치를 알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훨씬 짧게 끝납니다. 화면 끝에 몰린 채로 붙어 싸우기보다, 거리를 두고 꼬리를 앞세워 탄을 흘리면서 때리는 쪽이 안전합니다.
자레코와 그 시절
세인트 드래곤을 만든 자레코는 1980년대 후반 자체 기판을 굴리며 꾸준히 아케이드 게임을 내던 회사입니다. 이 게임도 그 기판 계열에서 돌아갑니다. 같은 시기 자레코 게임들이 대체로 그렇듯, 화려한 물량보다는 아이디어 하나를 붙들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쪽입니다. 세인트 드래곤에서는 그것이 용의 몸통이었습니다.
이 게임은 이후 유럽 쪽 가정용 컴퓨터로도 옮겨졌습니다. 특히 아미가판은 음악으로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오락실 원판을 모르던 사람들이 그쪽으로 먼저 만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국내에서 아주 널리 깔린 기판은 아니었지만, 용을 조종한다는 그림이 워낙 강해서 한 번 본 사람은 기억했습니다. 슈팅을 좋아하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용 나오는 비행기 게임으로 불리며 이름 대신 생김새로 통했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난이도는 그 시절 기준이라 만만치 않습니다. 다만 자기 몸통을 방패로 쓴다는 아이디어는 여전히 신선하고, 몇 판만 붙잡고 있으면 왜 이 게임이 오래 기억되는지 금방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