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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기노 타츠진

쇼기노 타츠진 (Syougi no Tatsujin Master of Shougi) · 1995 · A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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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기계에서 장기를 둔다는 건 지금 생각하면 조금 어색합니다. 백 원을 넣고 앉아 한 수 한 수 고민하는 동안 뒤에서 다음 사람이 기다리는 풍경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런 게임이 꾸준히 나왔고, 심지어 킹 오브 파이터즈로 유명한 네오지오 기판에서도 나왔습니다. 쇼기노 타츠진이 그런 게임입니다.

쇼기노 타츠진(Syougi no Tatsujin - Master of Shougi)은 1995년 ADK가 네오지오용으로 만든 일본 장기, 즉 쇼기 대국 게임입니다. 컴퓨터를 상대로 두거나 옆 사람과 마주 앉아 둘 수 있고, 규칙은 실제 쇼기를 그대로 따릅니다. 화면에는 반상과 말이 놓이고, 레버로 커서를 옮겨 말을 고르고 놓을 자리를 정하는 방식입니다.

쇼기노 타츠진 보드·카드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5)

쇼기라는 게임

쇼기는 한국 장기나 체스와 뿌리를 같이하는 보드게임이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잡은 상대 말을 자기 말로 다시 반상에 내려놓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체스에서는 잡힌 말이 판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쇼기에서는 잡은 말이 곧 내 자원이 됩니다.

이 규칙 하나가 게임의 성격을 완전히 바꿉니다. 말이 줄어들면서 판이 단순해지는 체스와 달리, 쇼기는 후반으로 갈수록 오히려 말이 재투입되며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큰 말을 손해 보며 잡히는 것은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상대에게 무기를 쥐여 주는 일이 됩니다. 처음 두는 사람이 가장 크게 놀라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승진입니다. 말이 상대 진영에 들어가면 뒤집어서 더 강한 움직임을 얻습니다. 그래서 약해 보이는 보병 같은 말도 앞으로 밀어 놓으면 나중에 큰 위협이 됩니다. 이 두 규칙 때문에 쇼기는 판이 끝날 때까지 긴장이 풀리지 않습니다.

처음 두는 사람이 막히는 곳

한국 장기에 익숙한 사람이 쇼기를 잡으면 말의 움직임부터 다시 외워야 합니다. 이름이 비슷해도 가는 길이 다르고, 무엇보다 대부분의 말이 앞쪽으로만 갈 수 있어 뒤로 물러나는 수가 극히 제한됩니다. 그래서 앞으로 내민 말은 웬만해서는 되돌릴 수 없고, 한 수 한 수가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이 됩니다.

두 번째 벽은 왕을 지키는 방식입니다. 쇼기에는 왕 주변에 말을 모아 성처럼 쌓아 두는 정형화된 진형이 여럿 있는데, 이걸 모르고 공격만 하다 보면 자기 왕이 벌거벗은 채로 남습니다. 초반 몇 수를 방어 진형에 투자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알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세 번째는 잡은 말을 언제 내려놓느냐입니다. 손에 말이 들어오면 바로 쓰고 싶어지지만, 급하게 놓은 말은 대체로 상대에게 다시 잡힙니다.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손에 쥐고 기다리는 인내가 실력 차이를 만듭니다.

오락실용 보드게임이라는 형식

일본 오락실에는 마작, 쇼기, 바둑, 화투 같은 전통 보드게임을 다룬 기계가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젊은 손님이 몰리는 액션 게임 옆에서, 이런 기계는 조용히 앉아 시간을 보내려는 손님을 받았습니다. 한 판이 길고 회전율이 낮지만, 대신 오래 붙잡는 손님이 확실히 있었습니다.

네오지오 기판에서 이런 게임이 나온 것은 조금 특별한 경우입니다. 네오지오는 대전 격투와 슈팅으로 이름을 알린 기판이었고, 카트리지를 갈아 끼우는 구조 덕분에 가게 입장에서는 다양한 장르를 한 캐비닛으로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 유연함 덕분에 이런 조용한 게임도 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ADK는 네오지오에서 여러 작품을 남긴 개발사입니다. 세계영웅 시리즈와 닌자 코만도 같은 액션 게임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회사가 쇼기 대국 게임을 만들었다는 점이 이 작품의 독특한 지점입니다.

한국 오락실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이유

이 게임이 국내 오락실에서 거의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쇼기는 한국에서 즐기는 사람이 드문 게임이고, 화면의 한자 표기부터 진입 장벽이 됩니다. 규칙을 아는 손님이 없으면 기계가 돌지 않으니, 수입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국내에서는 마작 게임도 한정된 자리에만 놓였습니다. 반면 장기나 바둑을 다룬 국산 오락실 기계는 종종 있었는데, 이는 결국 그 지역 손님이 아는 게임이어야 기계가 돈다는 단순한 원리를 보여 줍니다.

지금 해 본다면

지금은 쇼기 규칙을 찾아보기 쉬워졌으니, 오히려 이 게임이 접근하기 편해진 면이 있습니다. 말의 움직임과 승진, 재투입 규칙 세 가지만 익히면 곧바로 한 판을 둘 수 있습니다. 컴퓨터가 상대를 해 주니 사람을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액션 게임처럼 반사신경을 요구하지 않으니 오래 앉아 있어도 지치지 않고, 한 수를 두기 전에 생각하는 시간이 그대로 게임의 재미가 됩니다. 오락실 게임을 훑어보다가 잠시 속도를 늦추고 싶을 때 꺼내 볼 만한 종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