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웜 짐 (게임보이컬러)
어스웜 짐 메너스 투 더 갤럭시 (Earthworm Jim Menace 2 the Galaxy USA) · 1999 · Crave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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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가 우주복을 입으면
주인공이 지렁이입니다. 그런데 그냥 지렁이가 아니라 커다란 하얀 우주복을 입은 지렁이입니다. 우주복 머리 부분에서 가느다란 몸이 삐져나와 있고, 그 몸으로 총을 들고 다닙니다. 이 기묘한 조합이 이 시리즈의 출발점이자 정체성입니다.
1990년대 서양 게임에는 이런 종류의 유머 감각이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진지한 영웅 대신 어딘가 어긋난 주인공을 내세우고, 과장된 애니메이션과 황당한 상황으로 웃음을 노리는 것입니다. 이 시리즈는 그 흐름 속에서도 손꼽히게 개성이 강한 축에 들었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어스웜 짐(Earthworm Jim: Menace 2 the Galaxy)은 이 지렁이 주인공을 조작해 옆으로 흐르는 스테이지를 진행하는 횡스크롤 액션 게임입니다. 총을 쏴 적을 처리하고, 발판을 뛰어넘고, 앞을 막는 장치를 넘어 스테이지 끝까지 가는 것이 기본 흐름입니다.
조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주인공 자신의 몸을 무기로 쓴다는 점입니다. 우주복에서 삐져나온 몸통을 채찍처럼 휘둘러 앞의 적을 때리고, 위로 뻗어 높은 곳에 매달려 이동합니다. 총을 쏘는 것과 몸을 휘두르는 것, 이 두 가지를 상황에 따라 나눠 쓰는 것이 이 게임의 핵심 감각입니다.
몸을 휘두르는 감각
채찍처럼 쓰는 동작은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이동 수단이기도 합니다. 건너갈 수 없어 보이는 간격도 위쪽 고리나 지형에 몸을 걸어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막힌 것처럼 보이는 구간에서는 위를 한번 올려다보는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가라는 신호일 때가 많습니다.
다만 이 동작은 판정과 타이밍이 까다롭습니다. 정확한 위치에서 정확한 순간에 눌러야 걸리고, 어설프게 시도하면 그대로 아래로 떨어집니다. 처음에는 실패가 잦지만, 몇 번 성공하고 나면 거리 감각이 손에 잡힙니다. 이 감각이 붙는 순간부터 게임이 눈에 띄게 재미있어집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함정은 총만 쓰는 것입니다. 총이 편하니 계속 쏘면서 나아가다가, 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구간에서 갑자기 막힙니다. 공격 수단이 둘인 게임은 대개 둘을 다 쓰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니, 잘 안 되면 다른 쪽을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는 낙사입니다. 이 시리즈는 적에게 맞아 죽는 것보다 발판에서 떨어져 죽는 비중이 큽니다. 특히 몸을 휘둘러 건너는 구간에서 실패하면 그대로 아래로 사라집니다. 확신이 없는 점프 앞에서는 한 번 서서 지형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조금 뒤로 물러나 도움닫기 거리를 확보하는 편이 낫습니다. 급하게 뛰어들어 잃는 목숨이 전체의 절반은 됩니다.
작은 화면으로 옮겨진 시리즈
원래 이 시리즈는 큰 화면에서 캐릭터가 큼직하게 움직이며 과장된 동작을 보여 주는 것이 매력이었습니다. 휴대용 기기로 옮기면서 화면이 작아졌고, 표현할 수 있는 색과 동작도 줄었습니다. 그래서 원작의 그 요란한 맛은 다소 덜합니다.
대신 액션의 뼈대는 남았습니다. 쏘고, 휘두르고, 매달려 건너는 그 조합이 작동하기 때문에 게임으로서는 성립합니다. 원작을 아는 사람에게는 축약판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이 시리즈가 무엇을 하는 게임인지 알기에 충분합니다.
지금 해 보면
난이도가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판정이 까다로운 동작이 진행의 핵심이라 초반에는 답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동작에 익숙해지는 과정 자체가 이 게임의 재미라, 몇 판 반복할 각오만 있으면 금방 손에 붙습니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생김새와 움직임이 주는 인상이 강합니다. 우주복 입은 지렁이가 자기 몸을 휘둘러 절벽을 건너는 광경은 다른 어느 게임에서도 보기 어렵습니다. 그 기이한 개성 하나만으로도 한 번쯤 열어 볼 이유가 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