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 파라다이스
잔잔 파라다이스 (Jan Jan Paradise) · 1996 · Electro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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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락실에는 한국 오락실에 거의 들어오지 않은 장르가 하나 있습니다. 마작 게임입니다. 화면 앞에 앉아 컴퓨터 상대와 둘이서 마작을 두는 기계인데, 일본에서는 하나의 큰 갈래를 이룰 만큼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게임마다 차별점을 내려고 애를 썼고, 이 작품이 택한 것은 상대를 고르는 재미였습니다.
잔잔 파라다이스(Jan Jan Paradise)는 1996년에 나온 마작 게임입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먼저 자기 캐릭터를 고르고, 그다음부터는 대국을 하나 치를 때마다 다음 상대를 여럿 중에서 직접 고릅니다. 이렇게 상대를 바꿔 가며 계속 이겨 나가는 것이 한 판의 흐름입니다. 이듬해에 속편도 나왔습니다.
둘이서 두는 마작
마작은 원래 네 사람이 두는 놀이지만, 오락실 기계에서는 대개 둘이서 두는 방식을 씁니다. 사람 대 컴퓨터 한 명씩만 앉는 구성입니다. 인원이 줄면 게임이 훨씬 빨라집니다. 자기 차례가 금방금방 돌아오고, 한 국이 끝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서 동전 하나에 여러 판을 굴릴 수 있습니다.
대신 계산이 달라집니다. 네 명일 때는 다른 사람이 버린 패를 가져올 기회가 많고 누군가는 빨리 나기 때문에 화료가 잦은데, 둘이면 패산에서 뽑는 비중이 커지고 상대의 버림패에서 정보를 읽는 것이 훨씬 중요해집니다. 상대가 무엇을 버렸는지 계속 보면서 어떤 패를 모으고 있는지 짐작하고, 위험해 보이는 패는 쥐고 있는 판단이 그대로 승패로 이어집니다.
마작을 처음 접하시는 분이라면 규칙 전부를 외우려 하지 마시고 두 가지만 잡고 시작하시는 것을 권합니다. 하나는 같은 숫자 셋이나 연속된 숫자 셋을 묶는 것, 다른 하나는 그 묶음 넷과 같은 패 한 쌍을 만들면 난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세부 규칙은 몇 판 두다 보면 화면이 알려 줍니다. 오락실 마작 기계는 대체로 조작이 단순해서, 손에 든 패 중 무엇을 버릴지만 고르면 됩니다.
상대를 고른다는 것
이 게임의 특징은 다음에 붙을 상대를 몇 명 중에서 직접 정한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얼굴을 고르는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상대마다 두는 방식이 달라서 실제 난이도가 달라집니다. 빨리 나는 것을 우선하는 상대가 있고, 크게 나려고 시간을 끄는 상대가 있습니다. 자기 손패 상황과 남은 체력을 보고 어느 쪽이 나을지 고르는 것이 하나의 판단 요소가 됩니다.
등장 캐릭터가 열 명 이상 되고, 그중 상당수가 같은 계통의 다른 게임에도 나오는 얼굴들입니다. 이 시기 일본 아케이드에서는 캐릭터 자산을 여러 작품에 돌려 쓰는 일이 흔했습니다. 개발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일수록 그림을 새로 그리는 부담이 컸기 때문입니다.
기판과 회사 사정
이 게임은 카네코가 만든 기판 위에서 돌아갑니다. 카네코는 1990년대에 자사 기판을 여러 회사에 열어 준 곳이고, 덕분에 규모가 작은 개발사들이 자체 하드웨어 개발 없이 아케이드 게임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만든 일렉트로 디자인 역시 그런 소규모 개발사입니다.
1990년대 중반은 아케이드 기판 성능이 빠르게 올라가던 시기입니다. 3D를 앞세운 대형 게임이 오락실 중앙을 차지하고, 대전 격투 기계 앞에 줄이 서던 때입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마작 게임은 조용한 구석에 놓여 있었습니다. 화려한 연출로 승부하는 대신, 앉은 사람이 오래 붙잡고 있게 만드는 방식으로 자리를 지켰습니다.
한국에서는 낯선 장르
한국 오락실에서 이런 마작 기계를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마작 자체가 국내에서 널리 즐기는 놀이가 아니었고, 화면이 온통 일본어인 데다 규칙을 모르면 첫 판부터 아무것도 못 하는 게임이라 손님을 붙잡기 어려웠습니다. 규칙만 알면 재미있다는 말은 규칙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장르는 국내에서 오랫동안 이름만 알려진 상태로 남았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마작 규칙을 다루는 한국어 자료가 많아졌고, 온라인으로 마작을 접한 뒤 옛날 오락실 기계를 찾아보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규칙을 어느 정도 아는 상태로 이 게임을 잡으시면, 한 판이 짧고 상대를 골라 가며 계속 이어 가는 구조가 꽤 손에 잘 맞는다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마작을 전혀 모르신다면 기본 규칙만 훑고 오시는 편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