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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보

핀보 (Pinbo SET 1) · 1984 · Jale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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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핀볼 게임은 대개 실제 핀볼 대를 화면 안에 옮겨 놓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공이 떨어지고 플리퍼로 쳐 올리고 범퍼에 맞아 튀는 물리를 얼마나 그럴듯하게 재현하느냐가 승부입니다. 그런데 1984년 자레코가 내놓은 이 게임은 그 방향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테이블 위에 작은 생물들이 돌아다니고, 공으로 깔아뭉개면 점수가 붙습니다. 특정 보너스를 달성하면 아예 화면이 다른 게임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핀보(Pinbo)는 자레코가 1984년 8월에 내놓은 비디오 핀볼 게임입니다. 2인 플레이를 지원하고, 조작은 8방향 레버와 버튼 두 개입니다. 핀볼이라는 형식을 가져오되 그 안에서 비디오 게임만이 할 수 있는 장난을 여럿 집어넣은 작품입니다.

핀보 기타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4)

핀볼인데 핀볼만은 아니다

이 게임의 재미는 규칙이 도중에 바뀐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 핀볼 대에서는 아무리 조건을 채워도 테이블이 야구장으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물리적인 판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비디오 게임에는 그런 제약이 없습니다.

이 게임에서는 보너스 조건을 채우면 미니게임이 시작되고, 진행 방식 자체가 달라집니다. 어떤 미니게임에서는 플리퍼를 테이블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핀볼에서 플리퍼는 아래 두 자리에 고정된 물건인데, 그것이 돌아다닌다는 것 자체가 핀볼의 전제를 뒤집는 발상입니다. 또 다른 미니게임에서는 테이블이 야구 형식이나 농구 형식으로 바뀝니다.

여기에 테이블 위를 돌아다니는 작은 생물들이 더해집니다. 이들을 공으로 깔아뭉개면 추가 점수가 붙습니다. 그래서 공을 살려 두는 것 말고도 노려야 할 목표가 하나 더 생깁니다. 핀볼의 기본 재미가 공을 오래 살리는 것이라면, 이 게임은 그 위에 사냥의 재미를 얹은 셈입니다.

핀보 기타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4)

어떻게 하면 잘 하나

핀볼 계열 게임에서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것은 공을 급하게 치지 않는 것입니다. 공이 내려오는 것을 보면 반사적으로 플리퍼를 올리게 되는데, 그러면 공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곧바로 아래로 빠지는 일이 잦습니다. 공이 플리퍼 위에 얹히는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치면 방향을 훨씬 정확하게 잡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목표를 정하고 치는 것입니다. 아무 데나 쳐 올리면 점수가 오르지 않습니다. 보너스로 이어지는 목표물이 어디에 있는지 먼저 파악하고, 그쪽으로 보내는 각도를 몇 번 시도해서 찾아 두면 그다음부터는 점수가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미니게임으로 넘어가는 조건이 무엇인지 알아 두는 것이 이 게임의 실질적인 공략입니다.

세 번째는 생물을 억지로 쫓지 않는 것입니다. 점수가 붙는다고 해서 공의 진로를 무리하게 그쪽으로 돌리다 보면 공을 잃습니다. 자연스러운 진로 위에 생물이 있을 때 챙기는 정도가 적당합니다. 공 하나를 오래 살리는 것이 결국 가장 큰 점수원입니다.

1984년의 기판 사정

이 게임의 하드웨어 구성을 보면 그 시절 사정이 드러납니다. 메인 CPU로 2MHz의 6502를 쓰고, 사운드는 3MHz의 Z80이 따로 담당합니다. 소리를 내는 칩은 제너럴 인스트루먼트의 AY-3-8910 두 개입니다.

메인 CPU와 사운드 CPU를 나누어 두는 구성은 이 시기에 자리를 잡아 가던 방식입니다. 하나의 CPU가 게임 진행과 소리를 모두 처리하면 화면이 복잡해질 때 음악이 끊깁니다. 사운드를 별도 칩에 맡기면 그런 문제가 사라집니다. 8910을 두 개 쓴 것은 동시에 낼 수 있는 소리의 수를 늘리기 위한 것이고, 핀볼처럼 효과음이 쉴 새 없이 터지는 게임에서는 필요한 선택이었습니다.

1985년에는 다른 곳에서 이 게임의 복제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인기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당시 오락실 기판 시장에서 복제가 얼마나 흔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지금 해 볼 만한가

자레코는 1980년대 오락실에서 꾸준히 게임을 내놓던 회사입니다. 이 게임은 그중에서도 초기에 속하고, 국내 오락실에 널리 깔린 기계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비디오 핀볼이라는 장르 자체는 그 시절 오락실 한구석에 한두 대씩은 있던 종류라, 형식 자체가 낯설지는 않습니다.

지금 브라우저로 실행해 보면 규칙을 익히는 데 몇 분이면 충분합니다. 핀볼의 기본 조작만 알면 바로 시작할 수 있고, 미니게임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구성 덕분에 짧게 여러 판을 반복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진지한 핀볼 시뮬레이션을 기대하면 어긋나지만, 핀볼의 형식을 빌린 1984년식 장난감이라고 생각하면 꽤 즐겁게 붙잡게 되는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