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오시 퀴즈 왕좌결정전
하야오시 퀴즈 왕좌결정전 (Hayaoshi Quiz Ouza Ketteisen the King of Quiz) · 1993 · Jale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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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게임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정답을 아는 순간이 아니라, 남보다 먼저 버튼을 누르는 순간입니다. 일본어로 '하야오시'는 빨리 누르기를 뜻합니다. 제목에 그 말이 앞에 붙어 있다는 것은 이 게임이 무엇으로 승부를 보려는지 처음부터 밝혀 두었다는 뜻입니다. 아는 것을 겨루는 게임이면서 동시에 손가락 반응 속도를 겨루는 게임이라는 얘기입니다.
하야오시 퀴즈 왕좌결정전(Hayaoshi Quiz Ouza Ketteisen)은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의 형식을 그대로 오락실로 옮겨 온 게임입니다. 문제가 낭독되듯 화면에 뜨고, 답을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 버튼을 누릅니다. 먼저 누른 사람에게 답할 권리가 넘어가고, 맞히면 점수를 얻고 틀리면 손해를 봅니다. 최대 세 명이 함께 앉을 수 있어 오락실 한 대 앞에서 진짜 퀴즈 프로그램 같은 그림이 만들어집니다.
빨리 누르기라는 규칙이 만드는 것
일반적인 사지선다 퀴즈 게임과 이 방식의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보통의 퀴즈 게임은 제한 시간 안에 답을 고르면 되니, 모르면 찍는 것이 언제나 이득입니다. 하지만 빨리 누르기 방식에서는 버튼을 누르는 행위 자체가 위험을 감수하는 선언입니다. 눌러 놓고 틀리면 벌점이 붙거나 그 문제의 기회를 통째로 잃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실력은 두 축으로 갈립니다. 하나는 당연히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문제가 어디까지 나왔을 때 누를지 판단하는 감각입니다. 문제 문장이 절반쯤 나왔을 때 이미 답이 보이는 유형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들어야 조건이 드러나는 유형도 있습니다. 성급하게 눌렀다가 낭패를 보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감이 잡힙니다.
세 명이 동시에 붙을 수 있다는 것도 이 규칙과 맞물립니다. 옆 사람이 나보다 빠르면 내가 아는 문제여도 손을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상대의 성향을 읽는 심리전이 생깁니다. 성급한 상대 옆에서는 조금 기다렸다가 상대가 틀리기를 노리는 전략도 통합니다.
문제의 결
문제는 일본의 상식 전반에서 나옵니다. 방송과 연예, 스포츠, 지리, 역사, 시사 같은 분야가 골고루 섞여 있고, 그 시절 일본 사회에서 통용되던 상식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을 본떴으니 그 프로그램들이 다루던 범위와 겹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 점 때문에 한국 사람이 이 게임을 하면 정답률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어 독해가 되더라도 문제 자체가 그 나라의 생활 감각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숫자를 묻는 문제나 세계 지리, 세계사처럼 국경을 덜 타는 분야도 섞여 있어 아예 손을 못 대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를 못 맞히더라도 이 게임의 리듬은 느낄 수 있습니다. 문제가 뜨고, 손가락이 먼저 반응하고, 답이 공개되는 짧은 사이클이 계속 반복되는 감각 자체가 이 장르의 매력입니다.
자레코와 퀴즈 게임 계보
자레코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아케이드 기판을 꾸준히 만든 일본 회사입니다. 슈팅과 스포츠, 액션 등 여러 장르를 오갔고, 자체 기판 계열을 굴리며 게임을 찍어 냈습니다. 이 게임은 그 회사의 메가시스템 계열 기판에서 돌아갑니다.
이 작품은 한 편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듬해에 후속작이 이어져 나오며 시리즈가 되었습니다. 퀴즈 게임이 시리즈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문제 데이터를 갈아 끼우면 새 게임이 된다는 장르 특성 덕분이기도 하고, 빨리 누르기라는 형식이 오락실에서 실제로 잘 통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1990년대 초 일본 오락실에서 퀴즈 게임의 위치는 명확했습니다. 대전 격투가 중심을 차지한 시기에, 격투를 하지 않는 손님과 여럿이 함께 앉고 싶은 손님을 붙잡아 두는 자리였습니다. 세 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구성은 그런 요구에 정확히 맞춘 설계입니다.
지금 잡아 본다면
이 게임을 지금 해 보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일본어를 읽으며 정직하게 겨루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제를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빨리 누르기의 긴장감을 체험해 보는 것입니다. 후자만으로도 왜 이 형식이 인기를 끌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이런 일본어 퀴즈 기판은 좀처럼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언어 장벽이 워낙 확실해서 손님이 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그 시절 일본 오락실의 한 풍경을 뒤늦게 들여다보는 창에 가깝습니다.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그 형식이 오락실 기판으로 어떻게 옮겨졌는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앉아 볼 값어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