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북
정글북 (Jungle Book the Europe) · 1994 · Vir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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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만화영화를 게임으로 만든 작품들은 1990년대 초반에 유난히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게임은 좀 특이한 위치에 있습니다. 같은 제목으로 여러 기종에 나왔는데, 기종마다 만든 회사가 다르고 내용도 서로 다릅니다. 16비트 기기용은 한 회사가, 8비트 기기용은 다른 회사가 각각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화면 사진만 보고 같은 게임이려니 하고 켜면 전혀 다른 구성이 나옵니다. 마스터시스템으로 나온 이 판은 그 8비트 계열의 얼굴입니다.
정글북(The Jungle Book)은 옆에서 보는 시점의 액션 게임입니다. 늑대 무리에서 자란 소년 모글리를 조종해 정글의 나무와 덩굴을 타고 넘으며, 길을 막는 동물들을 피하거나 물리치고 스테이지의 끝까지 나아갑니다. 원작 만화영화의 장면들이 배경과 등장인물로 곳곳에 들어가 있습니다.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기본은 뛰고 오르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점프하고, 매달리고, 덩굴을 잡고 흔들며 이동합니다. 여기에 던지는 공격이 붙습니다. 바나나처럼 던질 수 있는 물건을 주워서 적에게 맞히는 방식이라, 총을 쏘며 밀고 나가는 액션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던질 것이 떨어지면 공격 수단이 없어지므로 주워 두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스테이지는 한 방향으로 곧게 뻗어 있지 않습니다. 위로 올라가는 길과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갈리고, 어느 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만나는 것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길을 헤매기 쉽고, 익숙해지면 어느 경로가 안전한지를 알고 움직이게 됩니다.
디즈니 게임 특유의 성격도 있습니다. 적을 죽이는 것보다 지나가는 것이 목적이라, 굳이 싸우지 않고 타이밍만 맞춰 넘어가는 편이 나은 구간이 많습니다. 무작정 공격하려 들면 오히려 던질 것만 낭비하고 위험해집니다.
8비트판만의 사정
같은 제목의 16비트판은 화면이 훨씬 화려하고 스테이지 구조도 큽니다. 마스터시스템판은 그것을 축소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따로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그래서 스테이지 구성이나 난이도의 성격이 다릅니다.
기기의 성능이 제한되어 있으니 화면에 담기는 색과 배경의 겹은 적습니다. 대신 캐릭터의 움직임이 알아보기 쉽게 그려져 있어, 어디를 밟아야 하고 어디가 위험한지가 비교적 명확합니다. 화면이 작은 만큼 앞이 잘 안 보이는 구간이 생기는데, 이것이 이 판의 난이도를 올리는 주된 요인입니다.
이 시기에는 이런 식으로 기종별로 다른 팀이 다른 게임을 만드는 일이 흔했습니다. 판권을 산 회사가 여러 기종에 동시에 내려면 각각의 사정에 맞는 팀에 나눠 맡기는 편이 빨랐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같은 제목을 달고도 완성도와 성격이 제각각인 게임들이 나왔습니다.
막히는 지점
가장 자주 죽는 곳은 덩굴 구간입니다. 매달려서 흔들다가 놓는 타이밍을 잘못 잡으면 그대로 아래로 떨어집니다. 화면이 좁아 다음 덩굴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으므로,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한 칸씩 확인하며 넘어가는 편이 낫습니다.
두 번째는 던질 물건 관리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던져 버리면 정작 뱀이나 원숭이가 몰려나오는 구간에서 손이 비게 됩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적은 피하고,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적에게만 쓰는 것이 요령입니다.
세 번째는 시간입니다. 스테이지마다 제한이 걸려 있어, 길을 헤매다 보면 시간에 쫓깁니다. 그렇다고 급하게 뛰면 발판을 놓칩니다. 처음 한두 번은 길을 익히는 셈 치고 시간에 걸려 죽는 것을 감수하고, 경로를 파악한 다음 제대로 도전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빠릅니다.
원작을 옮기는 방식
이 게임이 원작을 다루는 방식은 그 시절 디즈니 게임의 전형입니다.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기보다, 기억에 남는 장면과 등장인물을 골라 스테이지의 소재로 씁니다. 정글의 나무 위, 물가, 폐허가 된 유적 같은 배경이 차례로 나오고, 원작에서 인상적이었던 동물들이 적이나 방해 요소로 등장합니다.
음악도 원작의 곡들을 8비트 기기의 소리로 편곡해 넣었습니다. 음이 단순해졌지만 멜로디는 그대로라, 만화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첫 스테이지의 곡부터 알아듣습니다. 이런 부분이 원작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 게임을 훨씬 즐겁게 만듭니다.
국내에서의 자리
한국에서 마스터시스템은 정식으로 유통되던 기기였습니다. 다른 이름으로 나온 국내판 기기와 함께 가정에 제법 보급되었고, 소프트웨어도 문방구와 상가를 통해 유통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기의 게임들은 국내에서 나름의 기억을 남겼습니다.
정글북이라는 이야기 자체도 익숙했습니다. 만화영화가 방영과 비디오로 소개되면서 아이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고, 그 캐릭터가 게임 화면에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손이 갔습니다. 디즈니 이름을 달고 나온 게임은 일단 믿고 집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화면은 소박하지만 구조는 제법 짜임새가 있습니다. 뛰고 매달리는 조작이 손에 익으면 진행이 훨씬 매끄러워지고, 길을 외우고 나면 처음의 답답함이 사라집니다. 설치 없이 브라우저에서 바로 켤 수 있으니, 만화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첫 스테이지부터 반가운 것들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