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펠렁커 II
스펠렁커 II (Spelunker Ii) · 1986 · Ir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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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떨어져도 죽는 그 탐험가입니다
스펠렁커라는 이름은 게임 역사에서 유독 잘 죽는 주인공의 대명사로 남았습니다. 자기 키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만 해도 그대로 쓰러지는 그 허약함이 하도 유명해서, 이 시리즈를 모르는 사람도 약해 빠진 주인공 이야기를 하면 이 이름이 나옵니다. 그 주인공이 아케이드용 속편으로 돌아온 것이 이 작품입니다.
스펠렁커 II(Spelunker II)는 동굴을 내려가며 길을 여는 횡스크롤 액션입니다. 발판을 딛고 뛰고, 밧줄을 타고 오르내리며, 다이너마이트로 막힌 곳을 뚫고, 열쇠를 찾아 다음 구역으로 나아갑니다. 유령 같은 방해꾼도 나와서 쫓아오는데, 이것들을 밀어내면서 목표한 곳까지 도달하는 것이 한 판의 흐름입니다.
전작보다 조금은 관대해졌습니다
이 아케이드판은 원작의 악명 높은 규칙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낙하 피해는 여전히 매섭지만, 적과 부딪혔다고 곧바로 판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체력이라는 개념이 들어오면서, 실수 한 번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던 원작의 가혹함이 조금 완화됐습니다.
대신 떨어지는 것에 대한 처벌은 여전합니다. 높이를 잘못 재고 뛰어내리면 크게 손해를 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기본기는 화려한 조작이 아니라 높이를 눈으로 재는 습관입니다. 내려갈 곳이 보이면 무작정 뛰지 말고 밧줄이나 사다리 같은 안전한 길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편이 훨씬 빠릅니다.
동굴 안의 구성도 단순한 발판 나열이 아닙니다. 미끄러지는 얼음 바닥이 있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구간이 있으며, 매달려서 건너가는 구간도 나옵니다. 구간마다 조작 감각이 달라지기 때문에, 하나의 조작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게임이 아니라 상황마다 손을 바꿔 쓰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열쇠를 모으는 구조가 뼈대입니다
부제가 말해 주듯 열쇠를 모으는 것이 진행의 축입니다. 길이 막혀 있으면 어딘가에 그 길을 여는 것이 숨어 있다는 뜻이고, 화면 밖으로 이어지는 통로나 다이너마이트로 뚫어야 하는 벽이 답인 경우가 많습니다. 앞으로만 달리는 액션이 아니라 지형을 살피며 왔던 길을 되짚는 구조라, 처음 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시간을 흘려보내기 쉽습니다.
여기서 초보자가 가장 많이 막히는 지점이 나옵니다. 길을 못 찾아 헤매는 동안 자원과 시간이 깎이고, 그 상태로 아래층에 내려가면 여유 없이 몰리게 됩니다. 그래서 새 구역에 들어가면 곧장 아래로 내려가기보다 그 층을 한 번 좌우로 훑어 보고 가진 것을 확인하는 순서가 안전합니다.
다이너마이트 같은 소모품은 아껴 쓴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막힌 곳을 뚫어야 할 자리에서 아끼다가 길을 못 열면 그대로 시간만 흘러갑니다. 반대로 아무 데나 터뜨리면 정작 필요한 곳에서 없습니다. 뚫어야 할 벽인지 그냥 배경인지 구분하는 눈이 이 게임의 숙련도입니다.
아이렘이 만들던 시절의 게임입니다
아이렘은 1980년대 중반 아케이드에서 개성 있는 액션과 슈팅을 계속 내놓던 회사입니다. 이 게임은 아이렘이 그 시기 여러 작품에 함께 쓰던 기판 위에서 돌아가는데, 화면 가득 색을 쓰면서도 안정적으로 스크롤을 처리하는 실용적인 하드웨어였습니다. 회사가 같은 기판을 여러 게임에 돌려쓰면서 개발 비용을 줄이던 시기의 산물입니다.
스펠렁커 시리즈 자체는 원래 가정용 컴퓨터에서 시작해 패미컴으로 이어진 계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흐름 중간에 아케이드판이 끼어든 셈인데, 오락실에서는 한 판을 짧게 끊어야 하니 탐색 위주의 원작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진행 속도를 조금 더 붙였습니다. 같은 이름을 달고 있어도 기종에 따라 내용이 갈라지는, 이 시절에는 흔했던 방식입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국내 오락실에서는 크게 유행하지 않았습니다. 1986년 무렵 국내 오락실의 주류는 슈팅과 벨트스크롤 액션이었고, 길을 찾고 열쇠를 모으는 유형의 액션은 한 판이 늘어져서 회전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업주들이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은 대체로 스펠렁커라는 이름을 다른 기종에서 먼저 접한 쪽입니다.
지금 브라우저에서 켜 보면 오히려 이런 게임이 편합니다. 100원의 압박 없이 한 층씩 지도를 머릿속에 그리며 내려갈 수 있고, 그렇게 하면 이 게임이 단순히 잘 죽는 게임이 아니라 지형을 읽는 게임이었다는 것이 보입니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그 악명 높은 허약함마저 나름의 규칙으로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