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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맨 배틀 앤 체이스

록맨 배틀 앤 체이스 (Mega Man Battle Chase) · 1997 · Ca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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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맨이 총 대신 운전대를 잡습니다. 그것도 정정당당한 레이스가 아니라, 상대 차에 미사일을 쏘고 지뢰를 뿌리며 달리는 난장판 레이스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상금의 용도입니다. 라이트 박사의 컴퓨터가 벼락을 맞아 망가졌고, 그 수리비를 벌겠다고 록맨이 레이싱 대회에 출전한다는 것이 이 게임의 출발점입니다. 세계 정복을 막던 주인공이 수리비 때문에 경주장에 서는 이 태연한 설정이, 본편의 무거운 분위기를 좋아하던 사람에게는 꽤 낯설게 다가옵니다.

록맨 배틀 앤 체이스(Mega Man Battle & Chase)는 록맨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데려와 만든 대전형 레이싱 게임입니다. 코스를 돌며 순위를 다투되, 달리는 도중 아이템과 무기로 상대를 방해할 수 있습니다. 마리오 카트가 열어젖힌 캐릭터 레이싱 장르의 흐름 위에 록맨의 간판을 올린 작품이라고 보면 이해가 빠릅니다.

록맨 배틀 앤 체이스 레이싱 게임 화면 1 - 플레이스테이션 (1997)

이기면 상대의 부품을 뜯어옵니다

이 게임의 중심에는 개조가 있습니다. 레이스에서 이기면 진 상대의 자동차에서 부품 하나를 골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엔진, 타이어, 프레임 같은 것들이 상금 대신 굴러들어오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진행이 쌓입니다. 초반에는 밋밋하던 자기 차가 대회를 돌수록 남의 것을 하나씩 붙여 점점 빨라지고 무거워집니다. 어떤 부품을 챙기느냐에 따라 최고 속도형이 되기도 하고, 코너에서 잘 버티는 안정형이 되기도 합니다. 레이스 한 판이 순위 싸움이면서 동시에 다음 차를 만드는 재료 수집이 되는 셈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대로 최고 속도가 높은 부품만 집는 실수를 자주 합니다. 직선이 짧고 굽이가 많은 코스에서는 속도보다 접지력과 감속 성능이 순위를 더 크게 좌우하므로, 앞으로 남은 코스를 보고 부품을 고르는 편이 낫습니다.

록맨 배틀 앤 체이스 레이싱 게임 화면 2 - 플레이스테이션 (1997)

캐릭터마다 차가 다릅니다

출전 선수는 록맨 본편에서 보스로 나왔던 로봇들입니다. 각자의 성격에 맞춘 차와 고유 무기를 들고 나오기 때문에, 캐릭터를 고르는 일이 곧 주행 성향을 고르는 일이 됩니다. 가속이 좋은 대신 최고 속도가 낮은 차가 있고, 초반에는 느리지만 긴 직선에서 끝까지 밀어붙이는 차가 있습니다.

무기 차이도 큽니다. 앞으로 곧게 나가는 것, 뒤로 흘리는 것, 광역으로 퍼지는 것이 갈리므로 선두를 달릴 때 유리한 캐릭터와 추격할 때 유리한 캐릭터가 따로 있습니다. 자기가 늘 뒤에서 쫓아가는 편이라면 전방 공격이 강한 쪽을, 앞서 나가서 지키는 편이라면 후방 견제가 되는 쪽을 잡는 것이 편합니다.

막히는 지점과 요령

무기가 재미의 절반이지만, 이 게임의 승부는 결국 코너에서 갈립니다. 공격에 정신이 팔려 감속 없이 굽이로 들어갔다가 벽에 붙어 버리면, 무기 몇 발로 벌어 놓은 차이가 한 번에 사라집니다. 초반에는 공격을 아예 잊고 주행선만 익히는 편이 순위가 더 잘 나옵니다.

피격을 당한 뒤의 회복도 중요합니다. 맞으면 차가 흔들리고 속도가 죽는데, 여기서 당황해 조작을 크게 넣으면 미끄러져 더 손해를 봅니다. 코스 밖으로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로, 억지로 최단 거리로 돌아오기보다 방향을 제대로 잡고 다시 붙는 쪽이 빠릅니다.

북미를 건너뛴 사연과 국내 사정

이 작품은 일본에서 먼저 나왔고 유럽에도 발매됐지만, 정작 북미에서는 단품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잡지 광고까지 실렸음에도 발매가 무산됐는데, 당시 시장에 캐릭터 레이싱 게임이 이미 넘쳐났던 것이 이유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참 뒤 합본 형태로 서구권 이용자들이 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음악은 시리즈 특유의 밝은 곡조를 그대로 이어받았고, 보컬이 들어간 곡까지 실려 있습니다. 게임 자체의 평가는 갈리는 편이지만, 사운드트랙만큼은 지금도 따로 찾아 듣는 사람이 있을 만큼 인상이 강합니다.

국내에서는 록맨이라는 이름값 덕분에 제목은 알려졌지만, 실제로 해 본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오락실에서 본편 시리즈로 록맨을 익힌 세대에게 레이싱 게임으로 나온 록맨은 낯선 물건이었고, 정식 유통보다는 복사 시디로 우연히 접하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작품은 록맨 팬들 사이에서 "그런 게 있었다"는 식으로 회자되는, 시리즈의 외곽에 놓인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